『고려사』 선거지(選擧志) 학교조(學校條)에 의하면, 태조가 930년에 서경에 가서 학교를 창설하고 수재(秀才) 정악(廷鶚)을 서학박사(書學博士)에 임명하였다 한다.
또한 별도로 학원(學院)을 설치하여 6부의 생도를 모아 교수하게 하였는데, 뒤에 그 학교가 흥한다는 소식을 듣고 빛깔이 고운 비단을 내리어 그를 장려하는 한편, 의·복(醫·卜) 두 과정을 더 설치하고 곡식 100석을 내리어 학보(學寶)로 삼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 기사내용만으로는 그 학교가 어떠한 것인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어도, 태조 때 서경에 학교가 설치된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고, 또 그 학교가 하나만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이 서경의 여러 학교를 함께 칭하여 제학사원(諸學士院) 또는 제학원(諸學院)이라 하였다. 예종 때 서경을 중요시하여 분사제도(分司制度)를 실시하는 가운데, 1116년(예종 11)에 서경의 제학사원을 분사국자감으로 승격, 개편하였다.
그리하여 서경의 학교는 중앙의 국자감에 버금가는 학교가 되었으며, 관원으로는 판사 1인을 두어 3품관으로 겸직하게 하고, 그 아래 좨주(祭酒) 1인을 두어 소감(少監) 이상으로 겸직하게 하고, 사업(司業) 1인을 두어 원외랑(員外郎) 이상으로 겸직하게 하였다. 그리고 박사 1인, 조교 1인을 두어 실제 교수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묘청의 난으로 서경의 분사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1138년(인종 16)에 제학원으로 격하, 개편되어 각각 판관 1인씩을 두었으나, 1175년(명종 5)에 서경의 관제를 개편하는 가운데 제학원에 문사(文師) 1인, 기사(記事) 2인, 산사(算士) 1인, 기관(記官) 2인, 서자(書者) 2인을 두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