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청(喪廳)·궤연(几筵)·빈실(殯室)이라고도 하며 습(襲)을 마친 뒤에 설치한다. 옷걸이[椸架]를 시신 앞쪽에 마련하여 베로 덮고 그 앞에 교의(交椅)와 제상을 놓는다. 이것을 영좌(靈座)라고 한다. 흰 비단 또는 상포(喪布)로 혼백을 접고 종이로 그 중간을 싼 뒤 이를 종이로 만든 상자에 넣어 교의 위에 놓는다. 탁자 위에는 술잔에 술을 따라놓고 과일을 올려둔다.
제상 앞에 향안(香案)을 놓고 그 위에 향로와 향합을 놓는다. 향로는 서쪽에 두고 향합은 동쪽에 둔다. 그리고 이 신위를 모신 곳의 앞에 나무로 네모가 지게 묶고 그 나무기둥을 짚으로 돌려 싸서 여막(廬幕)을 만든다. 그리고 또 여막 안에 상주가 기거할 자리로서 짚으로 만든 고석(藁席)과 상주가 의지할 고침(藁枕), 즉 짚으로 만든 베개를 만든다. 그 밖에 시도소(時到所)도 대체로 상청에 마련한다.
시도소에는 시도기(時到記)와 부의록(賻儀錄)을 마련한다. 시도기에는 문상 온 조문객의 성명을 기록하고 부의록에는 문상객들이 부의한 내용을 기록한다. 장례 때 신주를 마련하면 초상 때 만든 혼백은 묘 앞에 묻어버리고 반곡(反哭) 때 신주를 모시고 돌아와 영좌에 모시게 되나, 신주를 마련하지 못하면 장례 후 혼백을 그대로 모시고 돌아와 교의에 모신다.
영좌 옆에는 죽은 사람이 생전에 사용하던 일용품들을 진열해 놓고, 또 문상객이 지어온 만사(挽詞) 혹은 제문(祭文) 등도 걸어둔다. 빈소는 상기(喪期)를 마칠 때까지 존속되며 이 곳에서 문상객들의 조문을 비롯하여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상식(上食)과 초하루·보름으로 행하는 삭망(朔望) 등이 행해진다. 빈소는 탈상 때에 철거된다.
한편, 지방에 따라 빈소를 차리는 곳이 다르다. 대청에 광목으로 칸을 막아 상청으로 삼는 곳도 있고, 사랑채의 방 하나를 비워 빈실로 하는 곳도 있으며, 마당에 방위를 보아 별도의 상막(喪幕)을 차리는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 유명반촌에서는 사랑채 옆에 따로 상청용의 건물을 짓는 경우도 있었다.
경상남도에서는 사람이 서서 불편하지 않을 높이로 정방형의 터를 잡아 가마니로 벽을 만들고, 이엉으로 지붕을 덮고, 문에는 가마니를 쳐놓기도 한다. 경상북도 안동의 양반가에서는 사랑채 앞에 짚으로 만든 발을 늘어뜨려 놓음으로써 빈소를 나타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