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복친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유복친에는 친족과 모계의 친척인 외족, 처계의 친척인 처족이 있다.
죽은 사람과 친척이라고 하더라도 친근의 차이에 따라 복제가 다른데, 복제는 복 자체에 구분이 있음도 물론이지만 상복을 입는 기간, 즉 상기(喪期)도 다르다. 복제는 친분의 경중과 촌수의 원근에 따라 5등급으로 구분되며, 이 5등급을 오복(五服)이라 하고 오복에 해당하는 사람을 유복친이라 한다. 오복은 참최(斬衰)·자최(齊衰)·대공(大功)·소공(小功)·시마(緦麻)로 구분된다.
복의 시작은 성복(成服) 때부터이다. 사람이 죽으면 복(復)·소렴(小斂)·대렴(大斂)의 절차를 거친 뒤 성복을 행한다. 대렴은 오늘날의 입관식(入棺式)이며, 입관 절차가 끝나면 망인에 대한 것은 매장만 남으므로 찾아오는 손님의 조문을 받기 위하여 지정된 상복으로 갈아입고 빈소를 차린다. 이것을 성복이라 한다.
이 성복에서 망인의 친척들이 지정된 규정에 따라 복을 입는다.
이러한 복제가 시행된 것은 중국에서 ≪주례≫가 제정된 주나라 때부터였고,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초기의 일로 985년(성종 4)이었다. 국가에서 법제화한 것은 정부관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며 서민들은 법으로 정하지 않고 자율에 맡겼다. 다만 관리들에게는 기복급가(忌服給暇)라는 특전이 있었는데 복 입는 기간 동안에 유급휴가를 주었던 것이다.
그 뒤 현종 때에 와서 제도가 다소 정비되었으나 고려시대의 복상제도는 조선시대처럼 엄격한 것은 아니었다. 상례를 국법으로 제정한 일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경국대전≫에 자세히 규정하였으며, 왕실의 예법은 ≪국조오례의≫에 따로 규정하였다. 오복을 입는 유복친의 적용 범위와 복 입는 기간은 [그림 1]·[그림 2]와 같다.
그 밖에도 일찍 죽은 자식에 대한 복이 있는데 19세에서 16세까지를 장상(長殤), 15세에서 12세까지를 중상(中殤), 11세에서 8세까지를 하상(下殤)이라고 하여 이것을 모두 삼상(三殤)이라 한다. 장상은 대공과 같은 상기인 9개월, 중상은 7개월, 하상은 소공과 같은 5개월이다.
[ 그림1·2]에서처럼 유복친의 범위는 남계 중심주의에 뿌리 내리고 있으며 거기에는 적서·장유 등의 구별이 엄존하였다. 가계의 계승을 중요시하는 원칙은 승중(承重)의 경우에 복이 무거워지는 데 잘 나타나고 있으며, 더욱이 장자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복이 ≪경국대전≫의 1년보다 더 무겁게 참최 3년으로 된 것 등은 일종의 상호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정책의 결과로 상장(喪葬)에 관한 예설(禮說)이 까다롭게 논의되었으며, 김장생(金長生)이 그 대가로 꼽히고 있다. 한편 이 까다로운 예설은 붕당정치와 결부되어 현종 때에는 자의대비(慈懿大妃:仁祖繼后 趙氏)의 복상문제를 둘러싸고 남인과 서인 사이에 2차에 걸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 진행되어 온 유복친의 개념은 근래에 와서 직계친의 범위로 한정되는 경향이 급격히 늘어나고, 따라서 친족간의 권리와 의무의 관계도 멀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