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998㎡. 관악산의 맨 끝자락 구릉 위에 위치한 사당초등학교 뒤편에 있다.
이 유적은 1973년에 처음 발견되어 1976년 서울대학교 조사단에 의하여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1976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사적 지정 당시 서울 지역의 유일한 백제토기 요지로 알려졌으나, 이후 각 지역에서 신라토기 관련 유물이 출토되면서 백제토기 요지가 아니라 신라토기 요지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또한 2006년 10월 서울대학교 박물관의 시굴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9세기)의 요지와 관련된 폐기장 유적으로 밝혀지기도 하였다.
사당초등학교를 건축하는 과정에서 이미 유적의 상당부분이 파괴되었으나, 가마의 바닥 부분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가마의 바닥은 생토면 그대로이며, 가마 바닥의 경사는 대략 17도 정도로 자연경사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가마의 규모는 소토(燒土)와 재가 남아 있는 범위를 기준으로 볼 때, 대략 길이가 4.5m, 폭이 0.7m로 여러 기의 가마가 밀집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마는 상부가 남아있지 않지만 남아 있는 구조로 보아 터널형으로 축조되었을 것이며, 경사면의 아래쪽에 있는 직경 1.6m, 높이 0.6m, 벽체 두께 0.2m 정도의 화구는 점토를 두텁게 발라서 반구형(半球形)으로 쌓아올렸을 것이다.
가마 내부와 주변에서 4점의 완형 토기를 비롯하여 다량의 토기편이 출토되었는데 뚜껑과 완(碗)·호(壺)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유물 중에 단각고배류가 발견되지 않고, 인화문 토기편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체로 7~8세기경 통일신라시대의 토기로 편년되고 있다.
그 밖에 ‘縣器村何支爲(현기촌하지위)’와 ‘性音(성음)’ 및 ‘舍知作(사지작)’등 명문이 있는 토기편이 출토되어 당시 토기의 생산과 공급체계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