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하자전투

  • 역사
  • 사건
  • 일제강점기
1933년 4월 한·중연합군이 일·만연합군을 격파한 전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재홍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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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33년 4월 한·중연합군이 일·만연합군을 격파한 전투.

내용

1932년 11월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은 중앙 회의를 개최하고, 길림구국군(吉林救國軍)과 합작하여 연합 작전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래서 한국독립군은 길림구국군(吉林救國軍)의 시세영(柴世榮) 부대와 연합군을 편성하고 항일전을 전개하였다.

1933년 2월 경박호(鏡泊湖)에서 첫 번째 연합 작전을 전개하여 대승을 거두었으며, 그 뒤 사도하자에 주둔하며 병사 모집과 훈련에 열중하였다. 그런데 1933년 4월 연합군의 군세가 증강되어 가고 있음을 탐지한 일본군과 만주군의 연합 부대는 사도하자를 공격하였다.

이때 한·중연합군은 이 기회에 일·만군을 섬멸할 계획을 세우고 전군을 4개 부대로 편성하였다. 제1로군은 소수 정예부대로 구성하여 적을 유인하도록 하였으며, 제2·제3로군은 삼도하(三道河) 뒤에 있는 분수령과 사도하 좌우 계곡에 매복시켜 주공격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리고 제4로군은 이도하(二道河) 입구에 숨어 있다가 적의 퇴로를 차단시키며 동시에 적의 수송차량을 탈취하게 하였다.

4월 15일 적은 1개 사단의 병력으로 황가둔(黃家屯)에서 이도하 방면을 거쳐 사도하로 진격하여 왔다. 그런데 적군은 아군이 작전 계획을 세운 바대로 함정에 들어왔고 이에, 아군 각 부대는 일제히 포문을 열어 급습함으로써 일본군은 응전할 사이도 없이 격파되었다.

적의 과반수가 살상되고 나머지는 어둠을 이용하여 도주하였다. 전투에서 아군의 손실은 극히 적었으며 길에는 적이 버리고 간 탄약과 군수품이 허다하여 다음날 저녁에 가서야 전리품을 다 정리 할 수 있었다.

5월 2일 독립군 유격대가 주안둔(朱安屯)·황가둔에 특파되어 일본군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완전히 소탕할 수 있었다. 그 뒤 한중연합군은 여세를 몰아 전군을 3개 부대로 나누어 동경성(東京城)을 공격하기로 하고, 6월 3일 전투를 개시하여 다시 한번 대승을 거두었다.

참고문헌

  • -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편, 1973)

  • - 『무장독립운동비사』(채근식, 대한민국공보처, 1949)

  • - 『광복』 2-제1기-(한국광복군총사령부 편,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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