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의 사리 봉안 유래와 변천을 기록하였다. 1권 1책. 책 끝에 1652년(효종 3)과 1705년(숙종 31)에 쓴 중수기가 수록되어 있다.
책머리에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자장(慈藏)이 643년(선덕왕 12)에 당나라에서 사리 100매와 금란가사 1령, 패엽경(貝葉經) 등을 가지고 귀국하여 황룡사 구층탑과 태화탑(太和塔), 통도사 금강계단에 이들을 봉안하였다는 기록을 수록하였다. 이어서 「만력계묘중수기(萬曆癸卯重修記)」가 수록되어 있다.
이 중수기에는 1592년(선조 25)에 왜적이 통도사의 탑을 헐고 사리를 훔쳐갔는데, 동래사람 옥백(玉白)이 왜적의 포로로 잡혀갔다가 사리를 가지고 탈출하였으며, 그것을 1603년에 다시 봉안한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1652년의 중수기에는 1603년의 중수 때 석축을 완전하게 하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 정인(淨仁)이 신정(神淨)과 함께 시주를 얻어서 중수한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1705년의 중수기에는 석가모니불의 사리에 대한 내력과 통도사가 문수보살(文殊菩薩)의 부촉으로 창건되었다는 사실 및 통도사 금강계단에 대한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과 그 당시의 보존상태 등을 기록하고 있다. 통도사의 역사 및 우리나라 사리신앙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