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고분군은 1974년 2월 26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고분군은 자굴산(해발 897m) 서쪽 사면을 근원으로 하는 야산 정상부와 그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크고 작은 봉토(封土)를 가진 것이 수백여 기에 달하나 대부분 일제시대부터 도굴당해 현재 원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1981년 6월 이 고분군 주위에 도로가 확장되면서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일부 고분을 발굴조사하였다.
삼가고분군은 모두 9기가 발굴조사되었다. 제4 · 5 · 6호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러널식〔多槨式〕으로 유구(遺構)는 구덩식〔竪穴式〕 · 굴식〔橫穴式〕 · 앞트기식〔橫口式〕으로 확인되었다.
구덩식은 장폭(長幅)의 비율이 큰 장방형(長方形)으로서 가야고분이라고 통칭되어온 것이다. 굴식과 앞트기식은 정방형(正方形)에 가까운 평면구조로서 남쪽 또는 서쪽으로 장벽에 치우친 널길〔羨道〕이나 좁은 입구를 가진 형태이다. 봉토는 판축(版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후에 동일 봉분 내에 유구가 첨가되어 여러널식으로 변화되면서 판축층을 자르고 있었다.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유구 내의 머리 · 발 위치에서 긴목항아리〔長頸壺〕 · 굽다리접시〔高杯〕 · 그릇받침〔器臺〕등의 토기와 쇠칼〔鐵刀〕 · 널못 등의 철기가 출토되었다.
삼가고분군의 무덤구조와 출토유물의 특징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즉, 이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토기류는 대가야식의 토기와 신라후기양식의 토기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조사된 고분들의 축조연대가 대가야의 멸망을 전후한 시기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대략 이른 식의 돌덧널〔石槨〕에서는 대가야식 토기가, 늦은 시기의 돌덧널과 돌방〔石室〕에서는 신라후기양식의 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묘제의 교체시기에 대해 시사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조사된 고분들에 한정할 경우 6세기 중엽부터 7세기 전반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완전히 파괴된 제4호분과 제1호분 봉토층에서는 5세기대의 가야토기가 출토되어 이질적인데, 이를 통해 전체고분군은 이미 5세기나 그 이전부터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고분군을 축조한 집단은 대가야의 지배체제 아래에 있던 지역의 지배집단이었고 대가야의 멸망 후에도 그 세력이 약화되지 않고 신라의 지역집단으로 잔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경주지역의 돌방무덤에서 출토되지 않고 백제지역의 돌방무덤에서 많이 출토되는 널고리나 널못 등이 이 고분군에서 출토되어 백제와의 관련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것은 비록 신라토기가 출토되더라도 대가야 말기에 백제의 영향으로 굴식돌방이 등장했을 가능성, 즉 백제 웅진시대(熊津時代)의 고분문화가 이 고분군의 축조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