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령·팔조목’이라는 명칭은 『예기』의 편명(篇名)으로 있었을 때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남송의 주희(朱熹)가 『대학』의 장구(章句)와 주석을 낸 뒤 『대학』이 사서(四書)의 하나로 격상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주희는 삼강령 가운데 친민의 ‘친(親)’을 ‘신(新)’으로 해석하여 친민을 신민이라 하고 그 의미를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삼강령·팔조목은 대학, 즉 큰 학문을 이루어가는 과정으로서 횡적으로는 삼강령과 팔조목이 서로 독립된 항목이지만, 종적으로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한 항목이라도 없으면 과정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대학』은 처음부터 삼강령·팔조목으로 설정하여 엮은 것이 아니다. 다만. 후학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하여 편의상 분류한 것이기 때문에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볼 수 있다. 삼강령 중에서 명명덕과 친민은 본말(本末)의 관계에 있으며, 지어지선은 명명덕과 친민이 지향하는 표적(標的)이다.
팔조목 가운데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의 다섯 조목은 명덕을 밝히는 것들이고, 제가·치국·평천하는 백성의 명덕을 밝혀 백성과 한마음이 되는 것이다. 또한, 격물·치지를 함으로써 지선의 소재를 인식하게 되고, 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함으로써 지선을 얻어 머무르게 된다.
삼강령·팔조목에 대하여 『대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천하에 명덕을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신의 명덕을 밝히고, 나아가서는 백성의 명덕을 밝혀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다 그 고유의 명덕을 가지게 한다.
사람마다 다 그 고유의 명덕을 밝힌다면 각기 제 마음씨를 성실하게 하고, 각기 제 마음을 바르게 하며, 각기 제 몸을 닦고, 각기 제 어버이를 친(親)하고, 각기 어른을 공경하여 천하의 평화가 이룩된다.
그러나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으므로 천하를 평화롭게 하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먼저 제 나라를 다스려야 할 것이다. 또한 나라의 근본은 가정에 있기 때문에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먼저 제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할 것이며, 가정의 근본은 자신에게 있으니 가정을 잘 다스리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먼저 제 몸을 닦아야 한다.
그런데 몸의 주체(主體)는 마음이니 혹시라도 그 본연(本然)의 정직함을 상실하게 되면 몸에 주(主) 되는 바가 없어져서, 비록 부지런히 몸을 닦으려고 해도 역시 닦을 수가 없다. 따라서 몸을 닦으려고 하는 이는 반드시 먼저 제 마음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
또한 마음이 발(發)한 마음씨[心]에 혹시라도 사욕(私欲)이 섞여 들면,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는 데 성실하지 못하게 되어 마음의 누(累)가 되니, 비록 부지런히 마음을 바르게 하려 하여도 역시 바르게 할 수 없다. 따라서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씨를 성실하게 하여야 한다.
사람마다 모두 앎이 있지만 혹시라도 그 앎의 표리(表裏)를 투철하게 남김없이 추극(推極)하지 못하면 은미(隱微)한 사이에 참과 거짓이 섞여 비록 열심히 노력하여 성실하려고 하여도 역시 성실할 수가 없다. 따라서 마음씨를 성실하게 하려고 하는 이는 반드시 먼저 그 앎을 끝까지 추급(推及)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천하의 사물에는 반드시 각각 ‘그렇게 된 까닭(所以然之故)’과 ‘당연히 그렇게 하여야 할 법칙(所當然之則)’, 즉 이른바 이(理)라는 것이 있다.
사람마다 모두 이를 알고는 있지만 혹시라도 그 이를 남김없이 구극(究極)하지 않으면 앎에 가리움이 있게 되어, 비록 열심히 노력하여 앎을 이루려고 하여도 역시 할 수 없다. 따라서 앎을 이루는 길은 사물에 나아가서 그 이치를 관찰하는 격물(格物)을 해야 된다.
격물을 하여 만물의 이치가 나의 인식 범주에 들어오게 되면, 즉 물격(物格)하게 되면 앎이 이루어지고, 앎이 이루어지면 마음씨가 성실해지고, 마음씨가 성실해지면 마음[心]이 바르게[正]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되면 몸[身]이 닦이고[修], 몸이 닦이면 가(家)가 다스려지고[齊], 가정이 다스려지면 나라[國]가 다스려지고[治], 나라가 다스려지면 천하가 태평하게 된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의 권근(權近)은 그의 『입학도설(入學圖說)』의 「대학지도(大學之道)」에서, 삼강령·팔조목의 상호 관계를 체계적으로 도식(圖式)하여 후학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도모하였다. 이 도식은 후대 이황(李滉)에 의하여 『성학십도(聖學十圖)』의 하나가 되었다.
박세당(朴世堂)은 『사변록(思辨錄)』에서 명명덕과 신민만이 강령이 될 수 있고, 지어지선은 강령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정약용(丁若鏞)은 『대학공의(大學公議)』에서 강(綱)은 명덕(明德)이요 목(目)은 효제자(孝弟慈)일 뿐이라는 강목설(綱目說)을 내세워 주희(朱熹)의 강목설을 전면 부인했다.
팔조목 설에 있어서도 문장 구조의 입장에서 격물·치지를 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 등과 같은 항목에서 독립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