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光山金氏). 호는 서룡(瑞龍). 서울 출신. 이이(李珥)의 제자 김장생(金長生)의 8세손이다. 17세에 종로에서 관인(官人)이 사형당하는 것을 보고 세속의 명리가 큰 걱정거리가 됨을 깨닫고, 경기도 안성청룡사(靑龍寺)로 출가하여 영월(影月)의 제자가 되었다.
19세에 지리산안국사(安國寺)에서 용악(龍岳)의 강석(講席)을 통하여 불경을 배운 뒤 용암(龍巖)에게 선(禪)을 배웠으며, 성전(聖典)의 법맥(法脈)을 이어받았다. 그 뒤 벽송암(碧松庵)에 머물면서 암자를 중창하였다. 그러나 자기 본래 면목을 밝히지 못하였음을 깨닫고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에 가서 수년 동안 좌선하여 오도(悟道)하였다.
1889년 12월 27일 병을 얻어 29일 열반에 들려고 하자 대중이 과세불공으로 걱정하였다. 그는 “내가 60년 중노릇을 하였는데 세상을 떠날 때에 어찌 불사(佛事)를 방해하겠는가?”하고 연기하였다.
다시 새해 초이틀 또 열반하려 하자 대중이 또 칠성재(七星齋)로 걱정을 하였으므로 다시 연기하였으며, 4일 사시(巳時)에 대중으로부터 불사가 없음을 확인한 뒤 모든 것을 부촉하고 조용히 입적하였다. 그는 부휴 선수(浮休善修)- 벽암 각성(碧巖覺性)- 모운 진언(暮雲震言)-보광 원민(葆光圓旻)-회암 정혜(晦庵定慧)-한암 성안(寒巖性眼)-추파 홍유(秋坡弘宥)에서 경암(鏡巖)- 중암(中庵)-성전으로 이어지는 부휴계의 법맥을 이었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영운(嶺雲)·동운(東雲)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