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저가」는 『시용향악보』에 수록된 방아타령이란 뜻의 고려가요이다. 부녀자들이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는 노동요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다. 「상저가」 사설의 뜻은 “들커덩 소리 나는 방아지만, 하찮은 밥이라도 지을 수 있음이 다행이로다. 시아버지 시어머니께 먼저 밥상을 차려드리고 남는 것이 있거든 내가 먹으리다.”의 해석이 일반적이다. 민간 향악곡인 방아타령, 즉 「상저가」는 연산군 당시 세말 군신연에서 불리게 되면서 관찬악보에 수록되었고, 이를 통해 현재까지 전해진 고려가요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다.
「상저가(相杵歌)」는 중국 문헌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경사스러운 자리에서 불리는 노래로 알려져 있다. 주1 사람인 사마천(司馬遷, B.C. 145? ~ B.C.91?)이 쓴 『사기(史記)』의 권68 「상군열전(商君列傳)」에 의하면 “오고대부(五羖大夫)가 죽자 진나라 남녀가 눈물을 흘리고, 동자는 노래를 부르지 않고, 방아를 찧던 자들이 상저가를 부르지 않았다.”는 내용이 전한다. 여기서 지칭하는 오고대부는 진나라의 어진 재상인 주2를 가리키며, 이을 통해 중국의 상저가는 경사적 성격을 가진 일반인들이 흔히 부르던 노래였음을 알 수 있다.
단, 여기서 상저가는 일반 명칭으로서 방아타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시용향악보』에 전하는 「상저가」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나라 「상저가」의 기원은 알 수 없으며, 연산군 11년(1505) 무렵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시용향악보』에 전하는 내용이 최초이다.
「상저가」는 부녀자들이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는 노동요의 일종으로 알려진 곡이다. 상저가 사설의 뜻은 “들커덩 소리 나는 방아지만, 하찮은 밥이라도 지을 수 있음이 다행이로다. 시아버지 시어머니께 먼저 밥상을 차려드리고 남는 것이 있거든 내가 먹으리다.”로 된 해석이 주3.
먼저 『시용향악보』에 수록된 「상저가」의 노랫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상저가」
듥긔동 방해나/ 디히 히얘
게우즌 바비나/ 지ᅀᅥ 히얘
아바님 어머님○/ 받ᄌᆞᆸ고 히야해
남거시든 내 머고리/ 히야 해 히야해
부녀자들의 노래로 알려진 「상저가」가 궁중에 수용된 과정 및 주4 악보인 『시용향악보』에 수록된 것과 관련해서는 현재까지 정설은 없다. 다만, 모두 현실 세태를 노래한 것들로, 고려 후기 대 문호 이제현(李齊賢, 충렬왕 13년(1287)~공민왕 16년(1367))의 시를 토대로 “백성의 풍속을 보아 세태의 변화를 앎(觀民風知時變)”으로써, 상층의 경계로 삼기 위한 것이라고 불린 배경이 해석되었다. 다만 『시용향악보』가 연산군 11년 무렵 나례를 위해 만들어진 악보라는 점과 이어지는 「풍입송」, 「야심사」가 군신연의 마지막 순서에 불리던 곡이었던 점에 비추어 역시 「상저가」 또한 세말 군신연에서 방아 찧는 연희와 함께 불리던 곡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상저가」는 다른 악보에는 보이지 않는 주5 따라서 이 곡이 고려가요로서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인지, 아니면 연산군 11년 당시 새롭게 만들어진 곡인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상저가」의 종지는 하오(下五)-하사(下四)로 장2도 상행 주6, 「생가요량」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의식음악의 고유한 특징인 순차적 하행종지와는 다른 형태라는 점에서 원래 불리던 원형의 노래이거나 당시에 향악풍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노래로 추정된다.
한편, 『시용향악보』의 「상저가」는 1976년 김기수(金基洙)에 의해 편곡, 재현되었는데, 김기수는 『시용향악보』 등에 전하는 「상저가」를 고악보의 내용에 근거하고, 나름대로의 재해석을 통하여 관현악 반주를 수반하는 중창형식으로 재구해 내었던 것이다. 이 음악이 『한국음악』 제7집에 전한다.
「상저가」는 고려 말부터 나례 때 방아를 찧던 연희를 묘사한 것 혹은 이 연희에서 부르던 것으로, 세태를 반영하고 경사적 성격을 나타내는 민간 가요이다. 「상저가」는 세말세초 군신연향에 채택되면서 전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