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재에서 각 2인씩 선임되었는데 상급자를 상색장, 하급자를 하색장이라 하였다.
또, 색장 위에는 장의(掌議 : 학생대표격)가 있었고 아래에는 조사(曹司)가 있었다. 이들은 성균관의 학생임원으로 동·서재에 당직하면서 문묘(文廟)의 수호·관리 및 학생자치에 관한 일을 담당하였다. 특히, 색장은 매일 아침·저녁 식당에서 도기(到記 : 출석부)를 확인, 감독하는 일을 맡았는데, 이는 성균관유생들의 원점(圓點) 산정기준이 되었다.
색장의 유고시에는 조사가 이 일을 맡았다. 도기의 감독을 게을리하거나 고의로 회피하는 경우는 처벌을 받았다. 색장을 비롯한 재임은 매년 춘추 2회의 석전(釋奠) 때 유생총회인 재회(齋會)에서 선출되었다.
신방(新榜 : 갓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학생들)에서 하색장을 맡고, 전방(前榜 : 전번 합격생들)에서 상색장, 그 전방에서 장의를 맡는 것이 관례였다. 재임이 사임하고자 할 때는 동료 재임에게 사표를 제출하여 대사성에게 보고, 수리한 뒤 후임자를 선임하였다.
그러나 당직일수가 50일 미만인 자는 사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색장은 장의와 함께 조선시대 성균관 학생간부의 하나로서 유생들의 자치활동과 여론형성에 큰 구실을 하였다.
이들은 조선 후기의 당쟁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여 재임을 놓고 싸우기도 하였는데, 정조대 이후는 노론과 소론계열의 유생들이 독차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