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서봉사

  • 종교·철학
  • 유적
  • 고려 후기
경기도 용인시 광교산(光敎山) 남쪽 기슭에 위치하여 고려, 조선시대에 운영된 사찰.
유적/건물
  • 건립 시기고려
  • 소재지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3년
  • 김윤지 (고려대)
  • 최종수정 2024년 09월 2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서봉사는 고려 명종 대에 건립되어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瑞峰寺玄悟國師塔碑)(보물 제9호)」가 남아있는 사찰이다. 현재는 사찰 터만 전한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었고 조선 초에 자복사(資福寺)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사세를 떨쳤으나 후기에 이르러 폐사가 되었다.

정의

경기도 용인시 광교산(光敎山) 남쪽 기슭에 위치하여 고려, 조선시대에 운영된 사찰.

서봉사(瑞峰寺)는 경기도 용인시 광교산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전체 사역(寺域)은 동원 · 서원 · 중원의 3곳으로 크게 나뉘며, 면적은 약 8만 1000㎡에 이른다.

중원에는 1185년(명종 15)에 세워진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보물 제9호)」가 남아있어 최소한 이 시기 전에 서봉사지가 창건되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해당 비석의 비문은 고려 이지명(李知命)이 지었다.

조선 태종 대에는 자복사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사세를 떨쳤다. 사역에서는 ‘서봉사(瑞峯寺)’ 명(銘) 명문와를 비롯하여 연호나 범자문 등을 새긴 14여 종 이상의 다양한 명문와가 출토되고 있다.

그러나 연호명 막새의 경우 17세기 이후에는 전혀 출토되지 않고, 막새의 제작 역시 급감하거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큰 변화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일부 건물지에서 다양한 철제 무기들이 출토된 사실과 광교산 일대가 조선시대 양란의 격전지 중 하나였던 점을 미루어 보건대 전란에서 기인하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후에는 명맥만을 유지하다 19세기에 이르러 폐사(廢寺)가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원전

  • - 『조선왕조실록』

  • - 『신증동국여지승람』

  • - 「서봉사현오국사탑비(瑞峯寺玄悟國師塔碑)」

  • 논문

  • - 최문환, 「용인 서봉사지 출토 명문와 연구」 (한국문화사학회, 2017)

주석

  • 주1

    :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와 용인시 수지구에 걸쳐 있는 산. 등산로와 산림욕장 따위가 잘 갖추어져 등산객이 많이 찾는다. 높이는 582미터. 우리말샘

  • 주2

    : 절이 차지하고 있는 구역 안. 우리말샘

  • 주3

    : 처마 끝에 놓는 수막새와 암막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4

    : 폐하여져 승려가 없는 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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