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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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에 설치, 운영하였던 얼음창고.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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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에 설치, 운영하였던 얼음창고.

내용

지금의 서빙고동 둔지산(屯智山) 기슭 한강 가에 있었다. 고려시대의 관습에 따라 조선 건국초에 설치되었다. 얼음의 채취 · 보존 · 츌납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된 관서이다.

여기에는 8개의 저장고가 있었고 총 13만4974정(丁)의 얼음이 저장되었는데, 이는 동빙고(東氷庫)의 12배, 내빙고(內氷庫)의 3배가 넘는 규모였다. 이곳을 관리하던 관원으로는 무록관(無祿官)인 별제(別制) 1인, 별검(別檢) 1인, 서원(書員) 1인, 군사 2인이 배정되어 있었으나, 조선 후기는 서원과 군사가 각기 3인씩으로 증치되었다.

동빙고가 국가 제사용 얼음, 내빙고가 궁중전용 얼음을 저장한 데 비해, 서빙고는 궁중, 문무백관 및 환자나 죄수들에게 나누어줄 얼음까지 저장하였다.

얼음의 저장은 한강이 4치의 두께로 어는 12월(양력 1월)에 시작되었고, 이듬해 3월부터 빙고를 열고 반출하기 시작하였다.

얼음을 저장하고 반출할 때는 먼저 사한신(司寒神)인 현명씨(玄冥氏)에 대한 제사의식이 있었다. 서빙고의 얼음 저장과 시설 관리를 위해서 연간 쌀 1,000여석의 예산이 소요되었다. →동빙고, 빙고○

참고문헌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육전조례(六典條例)』

  • - 『만기요람(萬機要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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