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군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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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 후기 시험을 거쳐 선발한 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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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 시험을 거쳐 선발한 군직.
내용

경기·충청·전라·경상도의 지방 군관 중에서 무술시험을 거쳐 뽑은 군관이다. 영조 때 함경도와 평안도를 제외한 전국의 토호(土豪)·부민(富民)의 자제를 선발하여 평상시에는 집에서 무예를 연습하고, 유사시에는 소집하여 군졸을 지휘하도록 하였다.

선무군관은 평상시 집에 있을 때는 매년 베 1필을 내도록 했고, 베를 대신하여 전(錢)으로 내면 1필당 2량(兩)이었다.

복무연한이 15세부터 60세까지이었으므로 한 사람이 평생 45필을 내는 셈이었다. 매년 관찰사의 책임으로 재주를 시험하여 1등을 하면 무과의 전시에 직접 가며, 2등은 복시에 직부(直赴)했고 3등에서 7등까지의 5인은 그해의 바칠 포를 면제하여 주었다.

또 부모의 상고(喪故)가 있는 경우는 2년 동안 납부를 면제해주었다. 매년 10월에 납부하며, 본래의 책정량은 모두 2만4500인이고, 1807년(순조 7)의 총액은 무명[木]101동(同) 34필, 베[布]6동 19필, 전 2만9066량이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속대전(續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만기요람(萬機要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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