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강요집』은 1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1531년(중종 26) 지리산 철굴암(鐵窟庵)에서 간행된 목판본이 가장 이른 시기에 간행된 판본이다. 이후 1611년(광해군 3)에 지리산 능인암(能仁庵)에서도 간행되었다. 두 판본 모두 『선문보장록』과 함께 간행되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907년과 1908년 선종의 강요서들을 모아 『선문촬요(禪門撮要)』를 간행할 때 『선문보장록』과 함께 『선문강요집』이 포함되었다. 『한국불교전서』 제6책에는 철굴암본을 저본으로 한 활자본이 수록되어 있다. 철굴암본은 국립중앙도서관, 능인암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선문강요집』은 「삼성장(三聖章)」 · 「이현화(二賢話)」 · 「제이편(第二篇)」‧「일우설(一愚說)」 · 「산운편(山雲篇)」 · 「운문삼구(雲門三句)」 6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고, 마지막에 간단한 발문(跋文)이 붙어 있다. 6편의 글 중 앞의 세 편에서는 임제삼구(臨濟三句)를 중심으로 임제종(臨濟宗)의 핵심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고, 뒤의 두 편에서는 운문삼구(雲門三句)를 중심으로 운문종(雲門宗)의 사상적 특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삼성장」은 청풍 장로(淸風長老)와 호월 상인(皓月上人)이 벽암 노숙(碧菴老宿)의 송헌(松軒)에서 임제의 가풍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임제의 삼구(三句) · 삼현(三玄) · 삼요(三要)에 대한 호월의 물음에 청풍이 답하는 형식이다. 제1구를 얻으면 부처와 조사의 스승이 되고, 제2구를 얻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며, 제3구를 얻으면 스스로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제1구는 삼요, 제2구는 삼현, 제3구는 온총삼구(蘊總三句)라고 하였다.
「이현화」는 월(月) 선객이 풍(風) 법사에게 묻는 형식이다. 임제의 사조용(四照用) 및 대기대용(大機大用)의 개념을 들어 삼구 ‧ 삼현 ‧ 삼요에 대해 자세히 밝히고, 현사(玄沙)와 운문(雲門)의 삼구에 배대된 내력을 설명하였다. 또한 임제종과 조동종(曹洞宗)의 차이에 대하여도 설명하고 있다.
「제이편」은 또 다른 승려의 질문에 풍법사가 답하는 형식으로 앞의 두 글에서 논의된 내용을 총괄한다. 하나의 구(句)에 삼현을 갖추어야 하며 하나의 현(玄)에 삼요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방편도 있고 활용도 있게 되니 이것이 임제의 의도라고 하였다.
「일우설」은 「삼현장」과 「이현화」를 읽어도 임제삼구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다며 찾아온 승려에게 우부(愚夫)라 자칭하는 노승이 답하는 형식이다. 조용(照用) ‧ 빈주(賓主) ‧ 권실(權實) ‧ 사료간(四料揀) 등의 개념을 이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산운편」은 백운자(白雲子)의 질문에 청산부(靑山父)가 답하는 형식이다. 운문삼구(雲門三句)를 통해 운문종의 종지(宗旨)를 설명하고 있다.
「운문삼구」에서는 삼구를 보다 상세하게 서술한 다음 3구가 1구가 되고 1구는 곧 3구가 된다고 하였다. 아울러 임제의 삼현과 삼요, 운문의 삼구와 일구, 천태지자(天台智者)의 삼지(三止)와 삼관(三觀)이 모두 동일한 뜻이라고 정리하였다. 말을 좇으면 종사(宗師)의 현묘한 말도 교학의 자취(敎跡)가 되지만 말을 좇지 않고 마음으로 추구하면 조사들의 현묘한 말뿐 아니라 교학의 이론이나 세간의 일상적인 말까지도 모두 깨달음을 얻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선문강요집』은 조선시대 선종의 정통 흐름으로 자리잡은 임제종의 핵심 사상을 설명하는 해설서로 조선 후기 불교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선문 5종의 사상적 특성을 서술한 환성 지안(喚惺志安, 1664∼1729)의 『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에는 임제종과 운문종을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또한 조선 후기에 여래선과 조사선의 차이를 강조하여 선 논쟁을 촉발한 백파 긍선(白坡亙璇, 1767~1852)의 『선문수경(禪文手鏡)』과 이를 비판한 우담 홍기의 『선문증정록』에서도 임제종의 사상을 이해하는 주요한 논거로 『선문강요집』을 인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