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작자는 미상이다. 축 형태의 채색필사본으로 세로 128㎝, 가로 58㎝이다.
「선산읍전도」는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 인근에 위치했던 선산읍성 일대를 회화식으로 그린 지도이다. 고을의 주산(主山)인 비봉산(飛鳳山) 아래 축조한 읍성의 내부는 대축척으로 그리고 주변 지역은 소축척으로 그린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읍지도(邑地圖)이다.
읍성의 북쪽으로 복우산(伏牛山), 비봉산의 산세가 강조되어 있고 남쪽은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甘川)이 읍성의 동쪽에서 북동쪽으로 흐르고 있어 선산읍성일대가 배산임수의 지형임을 한눈에 보여준다. 선산읍성은 본래 고려 말에 지군사(知軍事) 이득신(李得辰)이 토성으로 쌓았던 것인데, 세월이 흘러 훼손이 심해지자 1734년(영조 10) 부사(府使) 조두수(趙斗壽)가 다시 석성으로 쌓았다. 지도에는 읍성이 개축된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이 지도는 선산부를 회화식으로 그린 지도 가운데 읍성 내외부의 건물 배치가 가장 상세한 지도이다. 읍성의 동문·서문·남문[洛南樓]·북문이 표시되어 있고, 성내에는 동헌·외동헌·내아·공고(工庫)·객사·관청·사창(司倉)·형방청·사령청(使令廳)·일선관(一善館) 등의 건물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 옛 선산부 읍성 내의 건물 배치를 소상하게 볼 수 있다.
읍성 밖 동북쪽에는 향교가 위치해 있고 남문 앞에 위치했던 옥사(獄舍)도 표시되어 있다. 감천 강변 북쪽에는 길이가 20리 정도 되는 동지수(冬至藪)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김종직(金宗直)이 감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심어 가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선산부지도」와 비교하면 당시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여 읍성 안 찰미루(察微樓) 앞에 세웠던 척양비(斥洋碑)와 양무당(養武堂) 옆 포사청(砲士廳) 등이 보이지 않아 「선산부지도」보다는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선산부를 그린 고지도 가운데 읍치의 상황을 가장 상세하게 묘사한 지도로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