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불교가 성행했던 고려시대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동국여지승람』속간편이 간행된 1700년(숙종 26)에는 이 절이 있었음을 속간편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당시 이 절에 속해 있었던 암자로는 용문암(龍門庵) · 천태암(天台庵) · 산탄암(山灘庵) 등 5대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 200여 년 전에 정읍에 사는 권진사(權進士)가 절 안에 명당이 있음을 알고 여기에 묘를 쓰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시신은 뒷산으로 몰래 들여오고 앞 큰 길로 빈 상여를 만들어 행상을 하였다.
승려들이 모두 나가 상여를 제지하는 사이에 시신을 묻고 불을 질렀다고 한다. 그 뒤 절은 폐허화되었고, 그 자손들이 이곳에 머물러 살았다. 남은 유품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모두 가져가고, 밭을 경작하던 농부가 금불상이나 수저 등을 찾아내고는 하였다고 하나 현재는 주춧돌과 계단석 · 기와조각 등이 산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