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김씨(金氏). 호는 월담(月潭). 창화(昌化) 출신. 13세에 설악산으로 출가하여 숭읍(崇揖)의 제자가 되었고, 16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동문(同門)의 벗인 일여(一如)와 함께 보개산(寶蓋山)의 설청(說淸)에게서 수학(修學)하다가 다시 영평(永平)백운사(白雲寺)의 풍담 의심(楓潭義諶)을 찾아갔다. 편양 언기(鞭羊彦機)의 적전이었던 풍담 의심은 그의 사람됨을 알고 지극한 정성으로 가르쳤으며 그에게 법(法)을 전수하였다. 그 뒤 금강산과 묘향산 등지의 유명한 사찰에서 선교(禪敎)의 종지(宗旨)를 강설하였고 문예도 익혀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다.
특히 『화엄경』과 『선문염송(禪門拈頌)』을 좋아하여 입에서 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후학을 지도하여 그 깊은 뜻을 얻은 이가 수백에 이르렀다 한다. 대부분 금강산정양사(正陽寺)에 머물렀으며 만년에 금화산(金華山)징광사(澄光寺)로 옮겼다.
이때부터 산문 밖을 나가지 않고 후학들의 지도에만 전념하였는데, 그로 인해 호남지방에 경교(經敎)가 크게 천명되었다. 1704년 문인들을 모아 임종계(臨終偈)를 남기고 입적(入寂)하였다. 화장 후 사리(舍利) 2과가 나왔는데 징광사에 탑비를 세웠다. 문하에서 선과 교의 종장 환성 지안(喚惺志安)이 배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