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이수(耳叟), 호는 문두(文斗). 예문관대제학 성석용(成石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개(成槪)이고, 아버지는 홍문관교리 성희(成熺)이며, 어머니는 호조판서 이견기(李堅基)의 딸이다. 성삼문(成三問)의 재종제이다.
단종을 위하여 수절한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천성이 조용하고 담박하여 세간의 명리에 욕심이 없었다. 1456년(세조 2) 성삼문 등 사육신이 단종복위를 도모하다가 실패하여 처형되자, 아버지 성희도 친족이라는 이유로 연좌되어 혹독한 국문을 받고 김해에 안치되었다.
성희는 3년 뒤에 풀려나서 공주에 돌아왔으나, 마침내 충분(忠憤)으로 세상을 떠났다. 진사에 합격했던 성담수는 이 일로 충격을 받아 벼슬을 단념하고 선영이 있는 파주의 문두리에 은거하였다.
단종복위와 관련된 죄인의 자제에게는 전례에 따라 참봉벼슬을 제수하여 그들의 거취를 살폈는데,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직역(職役)에 복무하였으나, 그만은 끝내 벼슬하지 않고 시와 낚시질로 소일하였다.
1782년(정조 6)에 김시습(金時習)·원호(元昊)·남효온(南孝溫) 등과 함께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세상에서 김시습·이맹전(李孟專)·원호·조려(趙旅)·남효온·성담수 등을 생육신이라 일컬어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 함께 봉향하였다.
창녕의 물계서원(勿溪書院)에 성송국(成松國)·성삼문·성수침(成守琛)·성운(成運)·성제원(成悌元)·성혼(成渾) 등 성씨일문의 여러 현인들과 함께 제향되고 있다. 시호는 정숙(靖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