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북만주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던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와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이 중심이 되어 각지에 산재해 있던 군소단체를 통합하여 신민부(新民府)를 결성하였다.
이 신민부는 5개대대의 독자적인 독립군을 편성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는데 독립군 양성을 목적으로 목릉현 소추풍(穆陵縣小秋風)에 이 학교를 설립하였다. 교장은 신민부 중앙집행위원장인 김혁(金爀)이었으며, 부교장은 신민부 군사위원장인 김좌진(金佐鎭)이었다.
그리고 훈련을 담당한 교관은 박두희(朴斗熙)·백종렬(白種烈)·오상세(吳祥世) 외 5명이었다. 이 학교는 연 2회 6개월간의 속성교육을 통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는데 초기에는 150명의 청년을 선발하여 훈련시키다가 점차 증가되었으며, 총 졸업생이 500여 명에 달하였고 이들 졸업생은 신민부 독립군의 중견간부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