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5,111㎡. 조선 전기의 분청사기 가마자리가 4개의 소구릉에 널려 있으며, 기형(器形)은 대접·접시·병(甁)·바라기로서 대접과 접시가 대부분이고, 굽은 투박하고 가는 모래받침으로 구워 만들었다.
문양은 인화시문(印花施文)이 많으며 상감문양이 함께 소략하게 나타나 있는 것도 있다. 문양은 국화판(菊花瓣)·운문(雲文)·와문(渦文) 등이 많으며, 유약은 두껍게 시유하였고 청록색을 띠고 있다. 인화문(印花文)이 주로 나타나며 귀얄문도 있고, 일부 백자도 구웠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고령에서 상품자기(上品磁器)를 번조했다고 하였다. 현재까지의 조사로는 이곳과 사부동요지(沙鳧洞窯址)만이 확인되어 이 두 곳에서 상품을 생산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