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5,570㎡. 14세기 말부터 15세기에 걸친 상감청자(象嵌靑磁)와 인화분청사기(印花粉靑沙器)의 요지이다.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의 가마자리가 5, 6개 있는데, 그 중 퇴화된 상감청자요지는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의 것이며, 분청사기가마는 15세기의 것이다.
대접과 접시편(片)이 대부분으로, 기벽은 두껍고 굽은 투박하며 모래받침으로 구웠다. 문양은 대부분 인화(印花)·상감(象嵌)기법으로 소략하게 나타나 있으며, 국화판(菊花瓣)·운문(雲文)·와문(渦文) 등이 많다. 유약은 두껍고 암녹색을 머금고 있다. 퇴화된 말기의 청자는 유약과 문양에 약간의 변화를 가져오면서 15세기 전반기까지 계속되며, 이러한 바탕에서 분청사기가 만들어진다.
고령현(高靈縣)은 기산동(箕山洞)과 더불어 『세종실록』 지리지에 “자기소상품현동예현리(磁器所上品縣東曳峴里)”로 기록되어진 상품(上品)의 분청사기를 제작하던 곳으로, ‘高靈仁壽府(고령인수부)’ 명(銘)의 상품 인화분청과 귀얄분청, 백자편(白磁片)도 드물게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