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성능(聖能), 호는 화애당(花厓堂). 영천 화계리(永川花溪里)에서 출생. 아버지는 성영호(成領鎬),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로 한광표(韓光杓)의 딸이다. 최효술(崔孝述)을 사사하였다.
부모의 명으로 과거에 응시했으나 청탁(請託)을 일삼는 관기(官紀)의 문란(紊亂)함을 보고 벼슬길을 포기하고 위기의 학문과 경전(經典)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1878년(고종 15) 현령 윤자응(尹滋膺)의 청에 의하여 향교에 강석을 마련하여 마을의 청소년들을 교육하였는데 조정에서 『소학(小學)』과 향례(鄕禮)를 합한 책자를 하사하였다.
1886년(고종 23) 현령 송익로(宋益老)의 천거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고향을 지키면서 후진을 육성하였는데 얼마 뒤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저서로는 『대학주해(大學註解)』·『중용문답(中庸問答)』 등을 지어 경전의 어려운 곳을 해석하고 『역경연의(易經衍義)』·『괘획도(卦劃圖)』를 편저하였고, 문집으로는 『화애당유고(花厓堂遺稿)』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