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람들은 하루의 일과를 세수로부터 시작하였다. 즉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한 뒤에 빗질하고서 사당에 참배하고 부모에게 문안인사를 올린 뒤 각기 일을 시작한 것이다. 또한, 외출하기 전에, 외출했다가 돌아온 뒤에도 반드시 세수하였다.
이와 같은 생활관습 때문에 나그네는 세숫대야를 휴대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이러한 세수 중시는 청결 관념의 소산이지만, 위생 관념과 철저한 예의가 복합되어 일상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목욕을 일상화한 청결, 그리고 세수하지 않은 얼굴로 남을 대하면 대단한 결례로 생각한 예절생활 등의 반영인 것이다.
또 하던 일을 바꿀 때, 예를 들면 주부가 부엌일을 시작할 때라든지 선비가 학업을 시작하기 전에 손을 씻고는 하였다. 한편, 우리 나라 사람들은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희고 깨끗한 피부를 염원한 바, 희고 깨끗한 피부를 가꾸기 위하여 세수를 자주 함과 아울러 세수에 정성을 쏟았다.
특히, 얼굴을 통하여 그 사람의 내력과 됨됨이 및 품성 등을 헤아리는 관습이 일반화되어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고려시대 상류사회에서는 얼굴을 희고 매끄럽게 하기 위하여 갓난아기에게 복숭아 꽃물 세수를 시킨 예도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여자 외에 남자들도 분세수를 하였다.
분세수는 백분을 비누칠하듯이 바른 뒤에 씻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가정에서는 조두(澡豆 : 팥·녹두가루로 만든 비누의 원형) 및 잿물 혹은 콩껍질 삶은 물로 세수하여 때를 씻어내는 동시에 희게 하였다. 이와 같이, 세수를 중시함과 아울러 일상화하였기에 세수용품(청정제품과 기구, 즉 대야)이 발달하였다.
이 중에서 세숫대야는 돌·나무·종이·토기·청자·놋·분청사기 등으로 만들었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얼굴·손·발을 따로 씻는 한편, 남녀가 따로 사용한 까닭에 한 가정에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대야를 상비해두었으며, 혼수용품으로서 반드시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