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재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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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송시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7년에 간행한 시문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세한재유고 / 송시도 미디어 정보

세한재유고 / 송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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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송시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7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2권 1책. 석인본. 1967년 그의 12대손 공호(貢鎬)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성구용(成九鏞)·김성환(金成煥)의 서문과 권말에 공호와 종호(鍾鎬)의 발문이 있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4수, 서(書)·제문 각 5편, 묘표·일기(日記) 각 1편, 권2는 부록으로 행장·묘지명·묘갈명 각 1편, 제문 17편, 기(記) 3편, 서(書) 1편, 여지승람(輿地勝覽) 속록 1편, 제가기술(諸家記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저자의 형인 송시열(宋時烈)이 덕원으로 귀양을 가게 되자, 형이 지었던 시를 차운하여 유배되는 형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심정과 대현(大賢)이 떠난 뒤 조정에 불어닥칠 어려움을 걱정하는 마음을 읊은 「등철령경차숙씨우암선생운(登鐵嶺敬次叔氏尤庵先生韻)」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 가운데 「여혹인(與或人)」은 자신의 웅대한 포부와 현실간의 괴리를 우화적인 기법으로 서술한 것이다.

「일기」는 1674년(현종 15) 10월 1일부터 1689년(숙종 15) 6월 4일까지 16년에 걸친 기간 동안 전개된 당쟁의 전말과 이에 대한 조정의 처리과정, 그리고 송시열이 죄를 얻어 적소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오기까지의 전말, 저자가 벼슬을 사직하고 형의 적소에 동행하여 뒷바라지한 일, 그밖에 그동안에 받은 선물이나 방문객들의 명단 등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으로, 당시에 치열했던 예론시비(禮論是非)와 사색당쟁의 면모를 살피는 데 참고자료가 된다.

이밖에 송준길(宋浚吉)의 유덕을 추모하여 지은 「제중표형동춘당송공문(祭仲表兄同春堂宋公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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