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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김기요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7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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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김기요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7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37년 김기요의 아들 김한종(金漢鍾)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하겸진(河謙鎭)의 서문, 권말에 김극영(金克永)과 김두영(金斗永)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4권 2책. 석인본.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3에 시 170수, 서(書) 26편, 잡저 3편, 상량문 1편, 축문 1편, 제문 11편, 묘갈명 1편, 묘표 2편, 행장 1편, 유사 3편, 권4에 부록으로 만사 64편, 제문 22편, 가장(家狀) 1편, 행장 1편, 묘갈명 1편, 묘지명 1편, 묘표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의 「여곽면우(與郭俛宇)」는 곽종석(郭鍾錫)에게 보낸 것으로 저자의 양부 김민의 행장을 써 줄 것을 청한 것이다. 「답권천약상연(答權川若相淵)」은 권상연(權相淵)이 학문하는 방법을 물은 데 대해 답한 것으로 수학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성취를 위해서는 반드시 사우(師友)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잡저인 「삼동기행(三洞紀行)」은 삼동을 다녀온 기행문으로서 안음현(安陰縣: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있는 원학(猿鶴)·심진(尋眞)·화림(花林)의 3동에 대한 연혁과 그 곳에 살았거나 흔적을 남긴 이황(李滉)과 정온(鄭蘊)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리고 명승지인 요수정(樂水亭)·신씨선정(愼氏先亭)·척수대(滌水臺) 등의 위치와 주위의 경관 등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양세유사(兩世遺事)」는 저자의 선대인 김준민(金俊民) 부자의 행적을 엮은 것이다. 김준민이 온성권관(穩城權管)으로 있을 때 경원(慶源)을 침입한 오랑캐 이탕개(尼湯介)를 죽이고 도둑을 소탕한 일과 그 뒤 1591년(선조 24) 거제현감으로 부임 후 군비를 점검하고 군사를 훈련함으로써 이듬해 왜적이 침입했을 때 잘 싸워 전공을 세운 일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 밖에 옥씨(玉氏)의 3대 재사인 경모재(景慕齋)를 지을 때 쓴 「경모재상량문」과 곽종석의 일생을 추모한 「제면우곽징군문(祭俛宇郭徵君文)」 등이 있다.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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