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운전」은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중국 명나라 때 창작된 「소지현나삼재합」을 당대 우리의 정서에 맞게 개작한 것으로, 소운과 정씨 및 유복자인 소태를 중심으로 하여 소씨 집안 사람들의 이산과 가족 재회의 과정을 그린 가정소설(家庭小說)이다.
1책. 국문 필사본(筆寫本). 일명 「소운전」, 「소학사전(蘇學士傳)」이라고도 한다. 「월봉산기(月峰山記)」, 「월봉기(月峰記)」 등의 작품과도 같은 계열이며, 신소설기에 출간된 「봉황금(鳳凰琴)」도 같은 작품이다.
필사본에는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소윤전」 2책본과 1책본이 있으며, 방각본(坊刻本)에는 경판본(京板本) 「월봉기」와 완판본(完板本) 「별월봉기」가 있다. 더불어 활자본(活字本)에는 「봉황금」 등이 있다.
활자본을 중심으로 작품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탁주 구계촌에서 나고 자란 소운은 과거에 급제한 뒤 남쪽 변방 고을인 남계현 현령직을 제수(除授)받고, 어머니 장씨와 아우 소우와 작별하고 부인 정씨와 함께 임지(任地)로 향한다. 가는 도중 서룡이라는 도적에게 속아 그의 배에 탔다가 황천탄이라는 무인도에 이르러 소운은 대해(大海) 속에 던져지고, 부인은 감금된다.
다행히 소운은 널빤지에 의지하여 표류하다가 후주 땅 도곤에게 구출되었으나, 다리에 병을 얻어 고향을 찾지 못하고 도곤의 집에서 학동(學童)을 가르치며 세월을 보낸다. 한편, 부인 정씨는 서룡의 아우 서봉의 도움으로 서룡의 마수(魔手)에서 벗어나고, 이후 여승(女僧)의 구원을 받아 산사(山寺)에 의탁한다.
이때 부인은 만삭(滿朔)이었는데, 이 산사에서 옥동자(玉童子)를 낳았다. 부인은 여승들만 거처하는 산사에서 아이를 기르기 곤란함을 알고 나삼(羅衫)에 아이의 생년 일시를 적고 가락지와 함께 아이를 싸서 길에 버린다.
때마침 부인의 종적을 탐지하던 서룡이 아이를 주워다가 서계조라고 이름을 짓고, 자기 아들로 삼아 양육한다. 18세가 된 서계조는 과거를 보려고 황성(皇城)으로 간다. 도중에 탁주 구계촌 소 지현(知縣)의 집에 들러 장씨 노파(老婆)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장씨 노파의 아들을 찾아달라는 청탁(請託)을 받는다.
서계조는 과거에 급제하여 순무어사(巡撫御使)가 된 다음, 자신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음을 알고 조덕삼을 문초(問招)하여 자기가 서룡의 친아들이 아님을 확인한다. 또한 도어사(都御使) 앞으로 제출한 어머니 정씨의 원정서를 보고, 나삼과 단금을 증거로 자신이 소운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서계조는 이름을 소태로 고친다. 그리고 주점(酒店)에서 소운을 만나 이야기 끝에 소운이 자신의 아버지임을 확인한 다음, 월봉산 산사에 은거(隱居)하는 어머니 정씨를 찾아낸다. 또 서룡 일당을 잡아 부모의 원수를 갚고 귀환하여, 할머니 장씨까지 일가(一家)가 모두 모여 행복하게 산다.
소태는 과거 급제 직후 왕 상서(尙書)의 딸과 정혼(定婚)한 적이 있었는데, 다시 공주와의 혼사(婚事)가 이루어져서 한 번에 두 명의 부인과 성례(成禮)한다.
또한, 어사(御使)로 순행(巡行)할 때 물에 빠진 정 소저(小姐)를 구해 준 적이 있었는데, 후일 정 소저가 소태에게 구혼(求婚)한다. 이로써 소태는 정 소저를 셋째 부인으로 맞이한다. 뒤에 소태가 위급한 병에 걸리자, 정 소저는 자신의 다리 살을 베어 치료하는 절행(節行)을 행한다.
이 작품은 중국 명대(明代)의 소설인 「소지현나삼재합(蘇知縣羅衫再合)」을 번안(飜案)한 것이다. 소운, 소우, 장씨, 정씨 등 등장인물의 이름은 일치하나 서룡, 서봉, 도곤 등으로 등장인물의 이름을 다르게 바꾸어 고쳤다. 또한, 세부적인 사건이나 작품의 정조(情調)는 한국적으로 개작하였다.
「소학사전」은 「소운전」보다도 훨씬 개작의 폭이 넓어 「소운전」이 번안된 뒤 다시 개작된 작품이다. 「봉황금」 역시 후대에 개작된 작품이다. 「월봉산기」는 작품 후반부에 소태의 셋째 부인으로 들어온 정씨의 절행을 확대(擴大)하고 부연하고 있으나, 전반부는 「소운전」과 일치한다.
특히, 「소학사전」은 소태를 영웅으로 부각시키고 군담(軍談)을 첨가하고 있어 조선조 군담소설(軍談小說)로 번안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봉황금」은 사건 서술에 회상(回想) 수법(手法)을 사용함으로써 과감하게 현대소설의 기법을 도입하였다. 또한 여인의 고난상을 부각시키고 비환(悲歡) 이합(離合)을 주된 정조로 했다는 점에서 신소설식으로 번안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으로 확인된다. 「소운전」계 활자본은 1915년에 출판된 동미서시본 「봉황금」을 필두(筆頭)로 하여 1918년 보성사(普成社)에서 출판된 「소운뎐」에 이르기까지 약 32개월 동안 9종이 출판되었으며, 「춘향전」, 「삼국지연의」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출판된 구활자본(舊活字本)으로 확인된다. 여기에는 전대(前代) 방각본 출판으로 독자 흥행을 검증받았다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