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 때의 문신, 이병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9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서지적 사항
내용
「구폐의(捄弊議)」는 당시 관찰사나 수령들이 탐학무도를 자행해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하고 동학도나 도둑이 되게 만든 악폐를 지적하고, 그 개혁을 요구한 것이다.
첫째, 양병족재(養兵足財)의 방법으로 봉세관(捧稅官)·마름[舍音]·선격(船格) 등 관리의 지방 파견을 금지시키고, 둔목역토(屯牧驛土)를 매각 처분해 도성 주위 백리 내외의 땅을 사서 둔전법(屯田法)으로 양병(養兵)할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은행 예금의 이자로 양병하는 방법, 각 고을의 수령이 책임지고 관리하고, 일정한 세금을 바친 것으로 양병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하였다.
둘째, 인삼 정책에 있어서 갑오경장 이후 사역(司譯)들이 담당하던 인삼 교역을 금지시킴으로써 많은 통역원의 불만을 사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 해결책으로 30명을 한정하고, 종전처럼 무역을 하게 한다면 불만을 해소시키고 아울러 세수 증대, 국가 비용 절감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계갑일기」는 1893년 9월 28일부터 1894년 9월 8일까지의 만동묘(萬東廟) 복원을 위한 상소 과정을 적은 일기문이다. 당시 만동묘 복원에 대한 조정의 분위기, 재야 사림의 처지, 상소를 중심으로 한 사림과 유생들간의 관계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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