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계술 ()

과학기술
인물
해방 이후 경북대학교 물리교육학과 교수 등을 역임한 학자. 교육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3년(고종 40)
사망 연도
1966년
출생지
경상북도 경주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해방 이후 경북대학교 물리교육학과 교수 등을 역임한 학자. 교육자.
생애 및 활동사항

경상북도 경주 출생. 경북중학교를 거쳐 1929년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이과(理科)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1943년까지 대구 계성중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쳤다.

민족주의 정신이 투철한 교육자로서, 일제하 일어사용을 강요할 때도 그는 우리말로 생활하고 교육하였기 때문에 불온사상가로 지목되어 마침내는 일본경찰에 붙잡혀 광복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광복과 함께 다시 교육계로 돌아와서 대구사범학교장을 거쳐 건국 후에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장과 이 대학 물리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교육자로서 강직한 성품을 지녔으며 학자로서의 정열과 탐구력도 겸비하고 있었다. 주로 원적외선(遠赤外線)과 극초단파(極超短波)의 동일성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물리학발전에 기여한 손계술선생」(김병찬, 『과학과 기술』, 1983.7)
집필자
현원복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