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 출생. 경북중학교를 거쳐 1929년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이과(理科)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1943년까지 대구 계성중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쳤다.
민족주의 정신이 투철한 교육자로서, 일제하 일어사용을 강요할 때도 그는 우리말로 생활하고 교육하였기 때문에 불온사상가로 지목되어 마침내는 일본경찰에 붙잡혀 광복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광복과 함께 다시 교육계로 돌아와서 대구사범학교장을 거쳐 건국 후에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장과 이 대학 물리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교육자로서 강직한 성품을 지녔으며 학자로서의 정열과 탐구력도 겸비하고 있었다. 주로 원적외선(遠赤外線)과 극초단파(極超短波)의 동일성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