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 출생. 1953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47년 고려대학교의 이철승(李哲承) 등과 함께 전국학생연맹위원장으로서 신탁통치반대운동과 학교내의 좌익세력제거운동을 주도하였다.
1955년 잠시 단국대학 강사를 하다가 그해 제3대 국회의원, 1958년의 제4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는 자유당내의 소장 강경파의 한 사람으로 당원의 이론무장에 기여하였다. 4·19의거 당시 현역의원으로서 서울신문사장으로 있다가 신문사가 불타는 등 수난을 겪었고, 그해 5월 국회에서 제명되었다.
그는 다른 많은 지난날의 여당의원들이 정계에 복귀하거나 사업 등으로 활로를 개척한 것과는 달리, 외롭고 곤궁하게 정치인의 말로를 보냈다.
1966년의 여름 한때는 전라남도 화순의 탄광지대에 이르기까지 누더기 옷에 밀짚모자를 쓰고 샅샅이 누비며 5,000권의 성경책을 팔았다.
또한 한때 장기학원(將棋學院)을 열고 고려 청기와를 연구하는 데 몰두하였다. 『경세가와 정략가』·『세계의 국기』·『원수는 없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