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 높이 255㎝, 너비 102㎝, 두께 34.5㎝. 199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정철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사미인곡」 · 「속미인곡」 · 「관동별곡」 등을 남겼고 관직은 좌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그가 사망한 뒤 백여 년 동안 신도비가 세워지지 못하다가 1717년(숙종 43)에 가서야 이루어졌는데, 비문은 당대의 유학자 송시열(宋時烈)이 지었고 공조참판 김수증(金壽增)이 예서로 쓰고 두전(頭篆)도 썼다. 뒷면 마지막 줄에 새겨진 송시열의 추기(追記)가 숙종 14년(1688)으로 되어 있으므로 비문은 그 이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