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능상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시강원자의, 장령, 집의 등을 역임하였으며, 『운평문집』을 저술한 학자.
이칭
  • 동해자(東海子), 운평(雲坪)
  • 사능(士能), 사룡(士龍)
  • 이칭사홍(士弘)
인물/전통 인물
  • 본관은진(恩津: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
  • 사망 연도1758년(영조 3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장령|집의
  • 출생 연도1709년(숙종 35)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영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시강원자의, 장령, 집의 등을 역임하였으며, 『운평문집』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사룡(士龍), 호는 운평(雲坪) 또는 동해자(東海子). 송시열(宋時烈)의 현손이다. 한원진(韓元震)의 문인이다. 윤봉구(尹鳳九)·이재(李縡)·임성주(任聖周)·송환기(宋煥箕) 등 노론학자들과 교유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39년(영조 15) 5월 송인명(宋寅明)이 왕세자를 가르칠 적합한 인물로 다섯 명을 천거하였는데 그 중 한 명에 들어 시강원 자의가 되었다. 이듬 해 3월 춘추의리를 강조하여 원수를 갚고 치욕을 씻는 의리를 논하였다. 1744년 이후 여러 차례 장령에 임명되었다.

1750년 정우량(鄭羽良)이 우리나라의 도통(道統)에서 김장생(金長生)을 넣지 않고, 윤증(尹拯) 부자를 언급하자 노론의 입장에서 도통에 대하여 아뢰었다. 1752년 8월과 12월에 계속 장령에 임명되었고 1754년과 1755년 두 차례 집의에 임명되었다. 1758년 묘향산에 들어가서 『대학』을 강론하다가 객사하였다. 자품이 고매하고 규모가 정대하였다고 한다. 경학·예학 등에 밝았다. 저서로는 『운평문집(雲坪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철종실록(哲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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