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사룡(士龍), 호는 운평(雲坪) 또는 동해자(東海子). 송시열(宋時烈)의 현손이다. 한원진(韓元震)의 문인이다. 윤봉구(尹鳳九)·이재(李縡)·임성주(任聖周)·송환기(宋煥箕) 등 노론학자들과 교유하였다.
1739년(영조 15) 5월 송인명(宋寅明)이 왕세자를 가르칠 적합한 인물로 다섯 명을 천거하였는데 그 중 한 명에 들어 시강원 자의가 되었다. 이듬 해 3월 춘추의리를 강조하여 원수를 갚고 치욕을 씻는 의리를 논하였다. 1744년 이후 여러 차례 장령에 임명되었다.
1750년 정우량(鄭羽良)이 우리나라의 도통(道統)에서 김장생(金長生)을 넣지 않고, 윤증(尹拯) 부자를 언급하자 노론의 입장에서 도통에 대하여 아뢰었다. 1752년 8월과 12월에 계속 장령에 임명되었고 1754년과 1755년 두 차례 집의에 임명되었다. 1758년 묘향산에 들어가서 『대학』을 강론하다가 객사하였다. 자품이 고매하고 규모가 정대하였다고 한다. 경학·예학 등에 밝았다. 저서로는 『운평문집(雲坪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