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는 서곡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1957년에 북한의 원산력사박물관에 의해 5기의 석실분이 발굴 조사되었다. 고분은 해발 80m 정도의 야산줄기가 사방으로 뻗어 형성된 능선에 분포하고 있다. 외관상으로 확인 가능한 고분이 50∼60기에 달한다.
제1호분은 북쪽 능선에 자리잡고 있고 봉토는 이미 유실된 상태였다. 묘실은 남북방향을 장축으로 장변 4m, 단변 1.5m, 높이 1.7m의 장방형 평면형태를 가지고 있다. 천장은 5매의 대형 판석으로 이루어졌다. 시상(屍床)은 북벽에 맞대어 설치되었는데, 시상의 동면ㆍ서면은 각기 묘실의 동벽ㆍ서벽에 붙어 있다.
시상의 길이는 130㎝, 높이는 30∼40㎝로서 상면(床面)에는 인골ㆍ반지ㆍ철편 등이 널려 있었고, 바닥에는 서벽에 치우쳐 토기류가 부장되어 있었다. 나머지 고분 중 제2ㆍ3ㆍ4호분은 제1호분과 구조 및 규모가 흡사하였다. 제5호분은 장변 2m, 단변 0.8m, 깊이 70㎝의 소형분으로서 지하에 축조되었으며, 벽과 바닥은 강돌을 이용하였다.
용성리고분의 공통적 특징은 묘실에 연도가 딸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장법(葬法)은 소형분을 제외한 여타의 고분들에서는 부부합장, 혹은 추가장의 흔적이 보인다. 이러한 고분들이 축조된 배경에 대해 보고자는 용성리고분 출토 토기와 신라토기와의 유사성에 주목하면서 이 지역의 고대 종족들이 자신들의 풍속을 견지하면서 신라문화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고분의 축조연대는 이 지역이 신라의 세력권에 편입되는 6세기 중반 이후가 될 것이다. 이 고분은 강원도 북부와 함경남도 해안 일대에 분포하는 수많은 신라계 산성 고분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