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경수(景受), 호는 졸암(拙庵)·춘호(春湖). 호조판서 송기수(宋麒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주목사 송응형(宋應泂)이고, 아버지는 직장 송흥조(宋興祚)이며,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최흥원(崔興源)의 딸이다.
1597년(선조 30) 직장으로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승정원주서가 되었다. 이어 세자시강원사서·사헌부지평·사간원헌납·성균관전적·사간원사간을 거쳐 신천군수(信川郡守)·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603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정사 김륵(金玏)과 함께 명나라에 다녀온 뒤 성균관직강·예조좌랑·홍문관교리·성균관전적·사헌부장령·오위사직(五衛司直)·광흥창수(廣興倉守) 등을 거쳐 원손강학관(元孫講學官)으로 재임하던 중 파직되었다.
1609년(광해군 1) 장령·세자시강원보덕·집의·동부승지 등을 거쳐, 이듬해 세자시강원에 있었던 공으로 나주목사로 승진되었다. 이후 예조참판·대사헌을 거쳐 개성부유수가 되었으며, 재임 중 세 차례나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