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경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사간원헌납, 성균관전적, 사간원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경수(景受)
졸암(拙庵), 춘호(春湖)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0년(명종 15)
사망 연도
1637년(인조 15)
본관
은진(恩津: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
주요 관직
사간원헌납|성균관전적|사간원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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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사간원헌납, 성균관전적, 사간원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경수(景受), 호는 졸암(拙庵)·춘호(春湖). 호조판서 송기수(宋麒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주목사 송응형(宋應泂)이고, 아버지는 직장 송흥조(宋興祚)이며,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최흥원(崔興源)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7년(선조 30) 직장으로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승정원주서가 되었다. 이어 세자시강원사서·사헌부지평·사간원헌납·성균관전적·사간원사간을 거쳐 신천군수(信川郡守)·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603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정사 김륵(金玏)과 함께 명나라에 다녀온 뒤 성균관직강·예조좌랑·홍문관교리·성균관전적·사헌부장령·오위사직(五衛司直)·광흥창수(廣興倉守) 등을 거쳐 원손강학관(元孫講學官)으로 재임하던 중 파직되었다.

1609년(광해군 1) 장령·세자시강원보덕·집의·동부승지 등을 거쳐, 이듬해 세자시강원에 있었던 공으로 나주목사로 승진되었다. 이후 예조참판·대사헌을 거쳐 개성부유수가 되었으며, 재임 중 세 차례나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국조방목(國朝榜目)』
『호보(號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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