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3책. 목판본. 1852년(철종 3) 후손 현준(賢俊)·현곤(賢坤)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유치명(柳致明)의 서문, 권말에 이휘령(李彙寧)·이형수(李亨秀)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와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131수, 만사 6편, 부(賦) 5편, 권2에 소(疏) 3편, 계(啓) 1편, 격문 3편, 권3에 서(書) 11편, 잡저 3편, 제문 8편, 신도비 1편, 묘갈명 5편, 묘지명 4편, 권4에 유사 7편, 권5·6은 부록으로 세계도·연보·행장·시장(諡狀)·신도비명·묘지명·유사·청증작시소(請贈爵諡疏)·봉안문·축문 등이 실려 있다.
시는 오언고시·오언율시·칠언절구·칠언율시 등 형식이 다양한데, 특히 칠언율시가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의 국운을 한탄하고 애국심을 읊은 것이 많다.
소의 「청신토을사충간소(請伸討乙巳忠奸疏)」는 1569년(선조 2)에 올린 글로 을사사화 때 사사(賜死)된 윤임(尹任) 등의 신원(伸寃)을 청한 내용이다.
「신묘봉사(辛卯封事)」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1591년에 올린 것으로 일본의 침략에 대비할 것과 그 방책을 건의하고 있다. 격문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을 거두기 위해 지은 것이다.
서는 김성일(金誠一)과 내왕한 것이 대부분으로 왜적을 토벌하는 일을 논의한 것들이다. 또한, 이원익(李元翼)에게 보낸 「상오리이체상원익서(上梧里李體相元翼書)」는 당시 지배층이 사병을 가지고 개인적인 원한을 갚는 데 급급하여 관군을 쇠약하게 만들고 적을 토벌하지 못하는 폐단을 지적, 시정하도록 종용한 내용이다.
권4의 유사는 김성일과 곽재우(郭再祐)가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모집해 활약한 사실을 적어 놓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