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좌랑, 이조정랑, 부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03년 과천현감으로 동작진(銅雀津)의 방화사건을 잘 살피지 않고 모이를 피하고 모면하려고 했던 죄로 파직되었다. 사서·문학·정언·지평 등을 거쳐 1706년 암행어사에 제수되고, 도당(都堂)의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교리·수찬 등을 뽑기 위한 홍문관의 인사 기록)에 올라 교리·부수찬·수찬·헌납·이조좌랑·이조정랑·부응교·응교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709년 승지에 등용되었으며, 대사간·경상도관찰사를 거쳤다. 이듬해 참핵사(參覈使)가 되었을 때 일으킨 봉사욕국(奉使辱國: 사신으로서 국가 체면을 손상시킴)의 죄로 파직되었다. 대사간·승지·충청도관찰사를 지낸 뒤 호서(湖西)가 흉겸(凶歉)하므로 재차 충청도관찰사를 맡기자는 예조판서 민진후(閔鎭厚)의 건의에 따라 다시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이후 승지·대사성·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며, 개성유수로 있을 때 임소(任所: 근무하던 곳)에서 죽었다. 그 곳의 백성들이 선정을 베푼 송정명의 덕을 기념하여 타루비(墮淚碑)를 세웠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명신록(國朝名臣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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