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은진(恩津). 송기로(宋綺老)의 아들이다.
1885년(고종 22) 9월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등제하였다.
급제 후 이호석(李鎬奭)과 함께 고종으로부터 특위사악(特爲賜樂)의 대우를 받기도 하였다. 한권(翰圈)에 2년여 동안 머문 뒤, 주천(注薦)·관록(館錄)·도당록(都堂錄)을 차례로 거친 다음, 1892년 5월에 이르러서는 종묘별대제(宗廟別大祭)를 섭행하면서 당하집례(堂下執禮)를 맡기도 하였다.
이어서 성균관대사성이 되고, 이듬해 8월에는 승정원의 우부승지가 되어 권봉희(權鳳熙) 사건과 관련한 계(啓)를 올리기도 하였다. 동학농민봉기가 일어난 해인 1894년 4월부터는 사간원대사간에 올랐다.
1900년에는 시강원부첨사(侍講院副詹事)가 되었으며, 그 해 12월에는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되고 칙임관 4등에 서훈되었다. 1901년 6월에는 궁내부특진관으로 있으면서 장례원소경(掌禮院少卿)이 되었다.
이듬해 6월 장례원소경의 자리에 있으면서 당시의 관제개혁의 문제점에 대한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902년에 이르러서는 궁내부특진관으로 장례원소경의 직에 있었고, 칙임관 4등에 서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