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정여(正汝), 호는 규사(圭沙). 전라남도 화순 출신.
1905년 10월 일제의 침략에 항의하여 정3품의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직에서 사퇴하였다.
1910년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여 나라가 망했다는 비보를 듣고서 ‘우리의 구강(舊疆)을 내놓아라.’라는 요지의 혈서를 통감부에 보내고, 절명시(絶命詩) 5수를 유서로 남긴 다음, 자손들에게 효우(孝友)할 것을 당부하고 음독자살하려다가 집안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미수에 그쳤다.
그러나 밤을 이용하여 우물에 투신하여 54세를 일기로 순절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