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산(礪山). 송성회(宋星會)의 아들이다.
1888년(고종 25)에 급제하였으나 시권(試券)을 잘못 올림으로써 삭과되었다. 이듬해 12월 복과되어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90년 주서(注書)를 지내고, 1891년 12월에 수찬(修撰)으로 임명되었다. 1892년 5월 종묘 별대제(別大祭) 섭행 때에는 선전관(宣箋官)으로 참예하였다.
1893년 부호군(副護軍)으로 있을 때에는 패류(悖類)와 결당하였다는 지목을 받아 간삭지전(刊削之典)에 처해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