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성학(聖學), 호는 효산(曉山). 경상남도 합천 출신. 송희영(宋熹永)의 아들이며, 김황(金榥)의 사위이다.
1955년 경동고등학교 2학년 때 대입자격 검정시험에 합격, 195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에 입학, 196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석사학위를 받았다. 1962년 중동고등학교 교사, 1968년 충북대학교 전임강사·조교수, 1976년부터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를 지냈다.
20여 년간의 연구생활중 사회·경제사, 정치사, 사상사 분야에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였다. 사회·경제사 분야에는 「이조시대 환자취모보용고」·「삼남방물지공고」·「농민진휼책의 변질」·「현방고」 등의 논문이 있다.
특히 경영형 부농설에 관한 전면적인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한, 「조선 후기 농업에 있어서의 광작운동」과 관영수공업의 민영화 과정을 밝힌, 「이조 후기 수공업에 관한 연구」, 17세기 화폐유통 실태를 밝힌, 「조선 후기 행전론」 등의 업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정치사 관계 연구 성과로는 조선시대 중앙정부의 권력구조를 밝힌, 「조선조 사림정치의 권력구조」가 있고, 사회사 관계 논문으로는 「족보」·「조선 후기 교원생고」·「조선 후기의 중인연구」 등이 있다.
사상사 분야에는 실학자의 역사 인식을 다룬, 「성호의 새로운 사론」과 영남주리파의 인식논리를 밝힌, 「한주 이진상의 이기론연구」 등이 있다. 그 밖에 「한주전서해제」·「동산전서해제」·「갱장록해제」·「파산세고해제」·「홍범연의해제」 등이 있는데, 이들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들의 사상에 관한 이해를 돕는 글이다.
전반기는 주로 조선 후기 사회·경제사 분야의 연구에 치중하였으며, 후반기에는 사대부들의 의식 구조를 규명하는 데 전심하였다. 풍부한 사료의 섭렵을 전제로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인 역사 서술에 역점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