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성주 출신. 1902년 관직에 올라 종사랑(從仕郎)·법부주사(法部主事)로 근무하였다.
1919년 프랑스에서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되자, 김창숙(金昌淑)·곽종석(郭鍾錫)·김복한(金福漢) 등 유림계 지도자 137명 중의 한 사람으로 한국독립청원서를 작성, 강화회의에 제출하였다.
그 해 3·1독립운동 때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의 이기정(李基定)이 초전면의 송인집(宋仁輯)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할 때, 이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들은 초전면의 송씨 일족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계획, 준비하여 4월 2일 성주읍 장날을 기하여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는 그날 밤 더욱 거세어져 2명의 사망자를 내는 등 유혈충돌로 발전하였다.
이 시위의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붙잡혀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언도받았다.
198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