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2책. 목판본. 1734년(영조 10) 후손 위하(緯河)·성화(聖和)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조덕린(趙德鄰)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 도서에 있다. 1734년에 2권 2책으로 출간된데 이어 1833년(순조 33)에는 4권 2책으로, 1941년에는 6권 3책으로 증보되어 출간되었다. 1941년판에는 9세손 유도승(柳道昇)이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권1에 시 38수, 소(疏) 2편, 계사(啓辭), 지명(誌銘), 행장, 기(記), 잡저 6편, 서(書) 20편, 권2에 서(書) 20편, 부록으로 행장·유사·만장(挽章)·제문·봉안문, 보유(補遺)로 시 2수, 제문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성정(性情)에 근본을 두었다는 평을 들었다. 차운(次韻) 형식으로 지은 것이 많은데, 김성지(金性之)·이황(李滉)·김효석(金孝錫)·이준(李竣)·김홍미(金弘微)·김만열(金萬悅)·권일보(權一甫) 등의 시에 차운하였다.
계사는 1634년(인조 12)에 강학년(姜鶴年)이 원종추숭(元宗追崇)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양사(兩司)의 탄핵을 받자, 당시 지평(持平)이었던 저자가 피혐(避嫌)하면서 강학년을 두둔한 내용이다.
잡저 가운데 「유청도유생문(諭淸道儒生文)」은 설강(說講)하면서 유생들을 격려한 글이다. 「위빈총담(渭濱叢談)」은 이황·이이(李珥)·이언적(李彦迪) 등 명유(名儒)의 학문에 관한 말을 모아놓은 것이며, 「잡록(雜錄)」은 혼례·상례·학문 등에 관한 잡다한 기록이다.
서(書)는 당대의 문신인 정경세(鄭經世)·이준·김성지·김효중(金孝仲)·김만열 등에게 보낸 것이 많다. 특히, 정경세에게 보낸 것은 인조 연간의 정치적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 것이다.
「답의성사우별지(答宜城士友別紙)」는 조목(趙穆)의 문집인 『월천선생문집(月川先生文集)』에 아버지 유성룡(柳成龍)이 임진왜란 때 화의(和議)를 주장해 국가를 욕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과 관련하여 의성 지방의 선비에게 사실을 밝히고 아버지를 신원(伸寃)한 내용이다.
조선 중기의 정치사·사상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