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사

  • 역사
  • 제도
  • 조선 후기
조선 인조 때 남한산성을 개축하고 이를 수어하기 위해 설치한 수어청(守禦廳)의 종2품직 장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태진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인조 때 남한산성을 개축하고 이를 수어하기 위해 설치한 수어청(守禦廳)의 종2품직 장관.

내용

남한산성은 처음에는 삼남도검찰사(三南都檢察使)가 관리하였다. 그러나 정묘호란이 끝난 1628년(인조 6) 11월에 광주목사(廣州牧使)에게 남한산성 방어사를 겸하게 했다가 1632년경에 수어사가 임명되었다.

초기의 수어사는 경기 일대를 전관하는 총융사(摠戎使)의 직권 아래 그 지휘·감독을 받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뒤 1634년 2월에는 수어사가 남한산성의 모든 군사행정을 독자적으로 책임지게 되었다.

그러나 군사책임자인 수어사가 있고 행정책임자인 광주부윤(廣州府尹 : 인조 14년 2월에 광주목사가 부윤으로 승격)이 있는 이원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1652년(효종 3)에 광주부윤을 수어부사로 삼아 일원적 체제로 개편시켰다. 1683년(숙종 9) 광주부윤을 유수(留守)로 승격시켜 수어사의 책임을 맡게 함으로써 수어청이 단일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1690년에 광주유수의 질이 높아 재신(宰臣)이 파견되기 때문에 곧 경관직(京官職)으로 교체되어 군무가 소홀해진다는 폐단이 지적되어 다시 이원화되었다. 그 뒤 1750년(영조 26) 국가 경비를 줄여보자는 뜻으로 그 해 7월에 광주유수가 수어사를 겸하게 하였다.

1795년 8월에는 광주부를 유수로 승격시켜 유수가 수어사를 겸하게 하고, 유수가 자주 교체되는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 유수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하였다. 이렇듯 지휘체계의 모순으로 수어사가 자주 교체되는 바람에 남한산성의 방어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속대전(續大典)』

  • - 「수어청(守禦廳) 연구(硏究)」상(차문섭, 『동양학』제6집, 197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