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죽정공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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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정창연의 신도비.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완우 (원광대학교, 미술사)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9일
서울 수죽정공 신도비각 측면 미디어 정보

서울 수죽정공 신도비각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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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정창연의 신도비.

내용

총높이 303㎝, 비신의 높이 228㎝, 너비 84㎝, 두께 25㎝. 198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수죽(水竹)은 조선 중기의 문신 정창연(鄭昌衍, 1552~1636)의 호이다. 이 비는 1655년(효종 6)에 건립되었는데, 화강암제 방형 좌대(座臺) 위에 백일석(白一石)으로 비신과 이수(螭首)를 한 돌로 하여 얹었다. 좌대에 새긴 기린상과 이수 조각이 우수한 편으로, 아버지 정유길(鄭惟吉)의 임당정공신도비(林塘鄭公神道碑, 1646년)의 양식을 따랐다.

비문은 아들 광성(廣成) · 광경(廣敬)의 친우 영중추부사 이경여(李敬輿)가 짓고, 글씨는 우의정 심지원(沈之源)이 썼으며, “左議政鄭公神道碑銘(좌의정정공신도비명)”이란 두전(頭篆)은 여이징(呂爾徵)이 썼다. 비문은 비신 전면에 새겨져 있는데, 앞에 고조부 난종(蘭宗), 조부 광필(光弼), 부친 유길(維吉) 등 조상들의 약력에 이어 선조 · 광해군 · 인조 대에 봉사했던 정창언의 행력과 인품에 대해 적혀 있으며, 말미에 명문(銘文)이 있다.

참고문헌

  • - 『청음집(淸陰集)』

  • - 『서울금석문대관(金石文大觀)』(서울특별시,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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