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상 순음(脣音) 아래 ‘ㅇ’을 연서한 것(○, ㅱ, ㅹ, ㆄ 등)을 말한다. 원래 순경음이라는 용어는 중국 운서(韻書)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에 의하면 순음을 경(輕) · 중(重)으로 나누었다.
순경음은 오늘의 음성학으로는 양순마찰음(兩脣磨擦音, bilabial)이라고 부른다. 이 순경음을 훈민정음의 제정 때부터 크게 다루게 된 것은 특히 ‘○’이 15세기에 한 음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의 제자해(制字解)에서 “ㅇ을 순음 아래 연서하면 순경음이 되는 것은 가벼운 소리로서 입술이 잠깐 닿으면서 목구멍소리가 많기 때문이다(ㅇ連書脣音之下 則爲脣輕音者 以輕音脣乍合而喉聲多也).”라고 하였고, 용자례(用字例)에서는 “○ 如사ᄫᅵ 爲蝦(새우) 드ᄫᅴ爲과瓠(뒤웅박)”라고 예를 들었으며, 언해본 ≪훈민정음≫에서는 “ㅇᄅᆞᆯ 입시울쏘리 아래 니ᅀᅥ 쓰면 입시울 가ᄫᆡ야ᄫᆞᆫ 소리 ᄃᆞ외ᄂᆞ니라(ㅇ連書脣音之下 則爲脣輕音).”라고 언급하고 있다.
비록 /○/이 양순마찰음이라고 하여도 초성에서는 무성음(無聲音)으로서 [ɸ] 이 되고, 국어에서는 모음 사이에서 분절됨이 일반이어서 유성음(有聲音)인 [β]가 된다.
그런데 15세기에는 /ㅿ/과 /○/은 거의 비슷하게 사용되었지만 /ㅿ/은 23자모(字母 : 초성)체계에 들고 /○/은 그 체계에 들지 못하고 규정 맨 끝에 가서 부록과 같이 간단한 설명으로 다루고 있다.
그 이유는 세종이 일찍부터 운서의 대가로서 우리의 현실 한자음이 중국체계에서 보면 어떤 원칙이 없이 변화하였으니 이를 중국의 원음에 가깝게 개신하여야 한다고 믿어서 ≪동국정운≫을 엮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국정운≫은 새 한자음의 기준과 실제 사용법칙을 세운 운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동국정운≫의 23자모체계가 곧 ≪훈민정음≫의 초성체계가 된 것이며, 그 ≪동국정운≫의 순음에 중(重)과 경(輕)을 가르지 않아서 순경음이 제거되었으니, ≪훈민정음≫에 순경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음이 부록과도 같이 규정되어 맨 끝에 간략한 설명으로 처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어의 순경음이 국어에서 어떻게 발달하였는가에 관해서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 모음 사이의 /ㅂ/이 앞뒤의 유성음에 영향을 입어 순경음화한 것으로 보는 설이다. 둘째, 모음뿐 아니라 /ㄹ/ 뒤의 /ㅂ/음도 순경음 /○/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설이다.
이 두가지 설 가운데 첫째설이 통설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순경음 /○/은 모음 사이에서 또 /ㄹ/과 모음 사이에서 존재한다. 예를 들면, 셔ᄫᅳᆯ(京), 사ᄫᅵ(蝦), ᄃᆞᄫᆡ니(化, 爲), 더ᄫᅥ(暑), 글ᄫᅡᆯ(文), 셜ᄫᅥ찰칠(悲), ᄀᆞᆯᄫᅡ(並), ᄇᆞᆯᄫᅡ(踏) 등이다.
한편, 순경음 /○/은 그 다음에 오는 모음을 원순모음(圓脣母音)으로 만든다. 즉 ‘○>w’의 변화이다. ᄫᅡ>와, ᄫᅥ>워, ᄫᅳ>우, ᄫᅵ>위, ᄫᆞ>오, ᄫᆡ>외, ᄫᅴ>위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이것을 ‘○>오, 우’의 변화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자음이 모음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반모음 ‘w’로 바뀐 것이다. 예에서 보면 문자상 마치 ‘○’이 바로 ‘오, 우’로 변한 것처럼 보이나 ‘와, 외, 워, 위’ 등은 ‘오+아, 오+이, 우+어, 우+이’의 결합이 아니라 실제로는 ‘w+아, w+이, w+어, w+이’의 결합이다.
‘○+ᄋᆞ’는 ‘ᄋᆞ’에 원순성(圓脣性, w)을 더한 ‘오’로, ‘○+으’는 ‘으’에 원순성을 더한 ‘우’로 된다. 그래서 이미 원순모음인 것은 /○/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예를 들면, {{%035}} 따라서, /○/의 변화의 실례는 다음과 같다.
ᄫᅡ>와 : 도ᄫᅡ(助)>도와, 고ᄫᅡ(麗)>고와, 갓가ᄫᅡ(近)>갓가와
ᄫᅥ>워 : 더ᄫᅥ(暑)>더워, 어드ᄫᅥ(暗)>어드워, 어려ᄫᅥ(難)>어려워
ᄫᅩ>오 : 도ᄫᅩᆷ(助)>도옴, ᄂᆞᆺ가ᄫᅩᆷ(賤)>낫가온
○>우 : 더러○(汚)>더러움
ᄫᅳ>우 : 셔ᄫᅳᆯ(京)>서울, 더ᄫᅳᆫ(暑)>더운, 입시ᄫᅳᆯ>입시울(脣)
ᄫᅵ>위 : -디ᄫᅵ>-디위(反語)를 나타내는 어미)
ᄫᆞ>오 : 스胆ᄫᆞᆯ(鄕)>스胆올>싀골>시골, 사오나ᄫᅳᆫ(猛)>사오나온,
ᄒᆞᄫᆞᅀᅡ(獨)>ᄒᆞ오ᅀᅡ
ᄫᆡ>외 : ᄃᆞᄫᆡ니(化爲)>ᄃᆞ외니
ᄫᅴ>위 : 드ᄫᅴ(瓠)>뒹박
그러나 부사에 나타난 /○/은 탈락할 뿐이다. 受苦ᄅᆞᄫᅵ>受苦ᄅᆞ이, ᄠᅳᆮ다ᄫᅵ(如意)>ᄠᅳᆮ다이, 아ᄅᆞᆷ다ᄫᅵ(美)〉아ᄅᆞᆷ다이 등.
이 /○/의 기원에 대하여 신라시대에도 순경음, 또는 그에 가까운 것이 있어 그것이 15세기의 순경음 발달의 일단이라고 보는 설도 있지만 아직 공인까지에는 이르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본시 어두에 /ㅂ/인 말이 복합어를 형성할 때에는 그 /ㅂ/이 순경음이 된 예가 15세기에 상당수 보인다. 즉,
대(竹)+받(田)>대ᄫᅡᆮ(용비어천가 5권 25장)
대(大)+범(虎)>대ᄫᅥᆷ(용비어천가 5권 87장)
胆ᄅᆞ(粉)+비(雨)〉胆ᄅᆞᄫᅵ(월인천강지곡 36장)>가랑비
이와같은 방법으로 다음 어휘의 옛 어형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터(垈)+밭(田)>터앗, 알(卵)+밤(栗)>아람, 올(早)+벼(稻)>오려, 넓은(廣)∼너른(공존형), 갈비(肋骨)∼가리(공존형), 귀(耳)+보리(麥)>귀오리>귀리
위의 단어들은 이미 모음 사이 또는 그 아래의 ‘ㅂ’음이 순경음을 거쳐 탈락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문법에서 가령 ‘덥다’가 ‘더우니, 더운, 더워’에서 어간말음 /ㅂ/이 탈락되는 특이한 활용을 하는데, 이 불규칙 활용어의 발달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