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영수(永叟), 호는 이재(頤齋)·서명산인(西溟散人)·운포주인(雲浦主人)·월송외사(越松外史). 김원행(金元行)의 문인이다.
1759년(영조 35) 진사시에 합격, 1766년에 은일(隱逸)로서 장릉참봉(莊陵參奉)에 임명되고, 뒤이어 사포서(司圃署)의 직장·별제를 거쳐 익위사의 익찬이 되었으나, 곧 사퇴하였다. 1779년(정조 3)에 목천현감이 되었다가 다음해 사퇴하였고, 1786년 전생서(典牲署)의 주부를 거쳐 전의현감(全義縣監)이 되었다가 그 다음해에 사퇴하였다.
그의 학문은 실학시대의 학풍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것인데, 처음에는 이학(理學)의 공부에 힘쓰고 『주역』을 비롯한 경서의 연구도 하였으나, 북경을 거쳐서 전래된 서구의 지식을 받아 이를 소개한 공이 크고, 또 종래의 이학과 서구의 새 지식과의 조화를 시도한 점이 특색이다.
저서로는 『이재유고(頤齋遺稿)』·『이재속고(頤齋續稿)』·『이수신편(理藪新編)』·『자지록(恣知錄)』이 있다. 이 중 『이재유고』에 「자모변(字母辨)」·「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 등이 있어 국어학사의 연구대상이 되며, 운학에 대한 연구는 『이수신편』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