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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의 입자(笠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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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의 입자(笠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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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승립의 관모와 입형(笠形)은 일반 민속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고려사절요≫ 공민왕 6년조에는 문무의 백관은 흑의(黑衣)에 청립을 쓰고 승복은 흑건(黑巾)에 대관(大冠)을 한다고 하여, 백관에게 갓을 착용하게 했다는 사실과 승려에게 흑건과 대관을 착용하게 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또 ≪고려사절요≫ 충렬왕 33년조에서는 대선사는 팔면팔정립(八面八頂笠)을 쓰고 대덕 이상은 원정립(圓頂笠)을 착용하도록 하고 있어 승려들의 입자 착용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곧 승려들의 복제가 일반 민속의 전통을 잘 지키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연산군일기≫3년조에는 “성종은 갓 모양이 마루가 둥글고 차양이 넓은 것은 중의 갓을 본뜬 것 같다 하여 싫어하였다(成宗惡笠體圓頂而詹廣如僧笠模形).”라고 하여, 조선 초의 승립은 입체(笠體)가 둥글고 차양이 넓은 형태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것은 고려시대 때 대선사가 팔면팔정립을 하고, 대덕이 원정립을 착용한 것과 연관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때 일반서민의 갓은 그 착용이 일반화됨에 따라 모양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갓의 모양에 대하여 처음 논의가 된 것은 성종 때로 ≪성종실록≫에 “갓 모양이 승립과 비슷하니 그 제도를 개정한다.”고 하였다.

이 사실과 함께 ≪명종실록≫에 “갓의 첨단이 너무 넓어 승립과 같아 이를 개정한다.”고 한 사실 등에서 일반의 입제는 사회계층에 따라 그 형태가 여러 번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승립은 대체로 우리의 입제 발달과 보조를 맞추면서 전통성을 지켜왔다. 현재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착용하지 않고 있다.

그 종류로는 감투형[坎頭形]의 원정관(圓頂冠)과 죽립(竹笠)·굴립(屈笠)·송낙[松蘿]·고깔 등이 있었다. ① 원정관 : 승관(僧冠)으로 현재에도 이따금 방한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대선사나 대덕 이상이 주로 착용하였다.

② 죽립 : 대삿갓을 말한다. 대로 만든 삿갓에는 대삿갓과 세대삿갓이 있는데, 대삿갓은 승려용, 세대삿갓은 비구니용으로 만들었다. ③ 굴립 : 굴갓을 말한다. 조선 초기인 성종·명종대에서 “일반 민서(民庶)의 입체가 승립과 같이 모자의 정상부분이 둥글고 테두리가 넓어 그 제도를 개정한다.”고 한 내용 중의 승립이 바로 굴갓이다.

이유원(李裕元)은 ≪임하필기 林下筆記≫에서 불립(佛笠)이 변음하여 굴립이 되었다고 하고, 무학·유정 등의 승들이 공복으로 착용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원정흑죽립(圓頂黑竹笠)으로 방립계통에 속한 것이었다. ④ 송낙 : 소나무겨우살이를 상고시대의 변(弁)모양으로 엮어 만든 것이다.

송낙은 승려가 평상복에 쓰는 관으로 납의와 같이 착용하였으며 주로 여승이 착용하였다. ⑤ 고깔 : 신라의 여인관과 흡사한 것으로 고려 말 흑건대관이 이 고깔형이었다고 한다. 상고시대 때 변 모양의 관을 소나무겨우살이로 만든 것을 송낙, 저마포제로 만든 것을 고깔이라 한다.

참고문헌

『임하필기(林下筆記)』
『조선상식-풍속편-』(최남선, 동명사, 1948)
『한국복식사연구』(김동욱, 아세아문화사,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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