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실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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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 명종실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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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제13대 왕 명종의 재위 기간 전반에 관한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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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제13대 왕 명종의 재위 기간 전반에 관한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
개설

1545년 8월부터 1567년 6월까지 21년 11개월 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정식 이름은 ‘명종대왕실록’이다. 34권 34책. 인본(印本).

내용

『선조실록』에는, ‘1568년(선조 1) 8월 춘추관에서 영의정 이준경(李浚慶), 우의정 홍섬(洪暹)의 주재로 편찬 회의가 개최되고, 총재관(摠裁官) 홍섬 이하 당상(堂上)·낭청(郎廳)의 임명이 있은 3년 뒤인 1571년 4월에 완성되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때 편수관으로 활약했던 유희춘(柳希春)의 『미암일기(眉巖日記)』에는 보다 자세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를 통해 『명종실록』의 편찬을 포함, 분명하게 알 수 없었던 역대 실록의 편찬 방법을 엿볼 수 있다.

즉, 의정부의 재상이 춘추관에 모여[坐起] 실록청(實錄廳)을 설치하고, 실록사목(實錄事目)을 만들어 총재관·도청(都廳)·삼방(三房)의 당상과 낭청을 임명한 다음, 사목에 의거해 편찬 사무를 분담하였다. 편찬사무는 낭청이 주로 담당하였다.

도청이 종합 검토[檢擧]를 맡은 데 비해 각방(各房: 三房)은 수찬(修撰)의 임무를 맡아, 경중(京中)의 경우 15일 내에 사초(史草)를 납입하게 해 편찬에 착수하였다. 각 방이 담당한 편찬 내용은 일방(一房)이 즉위년·3년·6년……, 이방(二房)이 1년·4년·7년……, 삼방(三房)이 2년·5년·8년……식으로 분담하였다.

당대(唐代) 이후 정사(正史)의 편찬이 기(紀)·전(傳)·지(志) 등 부문별로 분담되었던 것과는 달리, 편년체 사서의 분찬 체재는 특이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미암일기』에 수록된 편찬관 직명을 『명종실록』 부록에 실려 있는 편찬관의 직명과 대비해보면 다음과 같다.

총재관은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 도청당상(都廳堂上)은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각방당상(各房堂上)은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로, 그리고 각방의 낭청은 본직의 품질에 따라 편수관·기주관·기사관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다른 실록에도 일반화할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이와 같은 직제와 편찬 방법에 의해 이루어진 『명종실록』에 참여한 인물은 다음과 같다. 감춘추관사는 홍섬, 지춘추관사는 오겸(吳謙)·이황(李滉) 등 9명, 동지춘추관사는 박순(朴淳)·김귀영(金貴榮) 등 10명, 편수관은 이제민(李齊閔)·이산해(李山海) 등 20명, 기주관은 유도(柳濤)·정언지(鄭彦智) 등 17명, 기사관은 홍성민(洪聖民)·윤탁연(尹卓然) 등 20명이었다.

이 실록은 각 권이 기본적으로 반년 또는 1년 분의 기사를 수록하고 있는데, 그것도 시기에 따라 바뀌고 있다. 곧, 명종 즉위년부터 7년까지는 6개월∼1년분이 번갈아 실리다가, 8년∼12년 사이에는 6개월분이, 13년∼20년 사이에는 1년분이, 그리고 21년∼22년 사이에는 6개월분이 수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정연한 체계로 편성한 이유에 대해서는 앞으로 검토되어야겠지만, 이 점은 기사의 편성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즉, 사실의 기록을 연대순으로 배열하되 날짜가 바뀌면 줄을 바꾸어 기록하였다.

또 같은 날의 기사도 대체적으로 국왕 및 왕실에 관한 일, 대외 관계, 국정 집행 및 이에 대한 의정부·삼사·육조의 상서(上書), 지방 행정, 천문지리 변화 등의 순으로 배열하였다. 때문에 역대 실록 중에서 가장 보기 편하게 편찬한 것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이러한 정연성은 사론(史論)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본문과 구별하기 위해 한 자 간격을 유지해 사론의 위치를 부각시켜 놓았다. 사론은 각 권마다 대개 50∼60개 정도 수록되어 있고 간략한 것에서부터 장문의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가 있다.

내용은 국왕·시정(時政)·상소·풍속·관료개인의 신상문제 등 여러 면에 걸쳐 있지만, 관료 개인에 대한 포폄(褒貶)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 세주(細註)는 다른 실록과 마찬가지로 보충 설명, 사건의 전말, 시세(時勢)의 이면(裏面) 등에 관한 것도 있지만, 이보다는 상소문과 외교 문서를 전재해놓은 것이 대부분이다.

참고문헌

『명종실록』
『선조실록』
『미암일기(眉巖日記)』
『한국사료해설집』(신석호, 한국사학회, 1964)
「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 보관」(신석호, 『사총』 5,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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