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살풀이춤 (·풀이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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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 살풀이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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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지방의 재인청(才人廳)에서 계승된 민속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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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수원 지방의 재인청(才人廳)에서 계승된 민속무용.
내용

수원 지방의 재인청(才人廳)에서 계승된 민속무용. 승무는 민속무용의 정수로 손꼽히며 불교의 교리의 입장에서 본 불교 기원설에서 유래하였다. 기원설이 여러 가지 전해져 내려 오고 있는데, 승무의 긴 장삼 소매를 잘 승화시킨 춤이다.

그 발달 과정은 첫번째로 소리 광대를 주축으로 부잣집 생일잔치에 초대되어 판소리나 승무를 추어왔으며, 두번째로 1905년경 우리 나라에서는 최초의 서구식 극장인 원각사가 세워져 광대나 기녀들의 판소리, 정재, 승무 등을 공연하면서 발전되어 온 것이다.

살풀이춤은 민속음악 가운데 살풀이라는 남도음악 장단에 맞추어 추는 춤이며, 원래 무당들이 신을 접하기 위한 수단으로 추었던 춤인데, 훗날 광대나 기생들에 의해 교방예술로 발전되어 춤의 내용이 한층 예술적으로 다듬어졌고 아름다운 기법과 형식으로 계승, 발전되고 있다.

이 살풀이춤은 고운 머리에 비녀를 꽂고 흰저고리와 치마에 버선, 그리고 옷고름이 늘어진 의상과 하얀수건을 쥐고 추는 것이 특징이다.

수원에서의 승무 · 살풀이춤은 정조대왕(正祖大王)의 행궁(行宮)이었던 화녕전(華寧殿)의 풍화당(風化堂) 내 재인청에서 계승된 것으로 조선 말 마지막 도대방(都大房) 재인청 재인의 우두머리였던 이동안(李東安)의 세습무(世襲巫)를 거쳐 현재 옥당(玉堂)정경파(鄭慶波)에 의해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 춤의 보유자인 정경파는 본래 충북 옥천 태생이지만 그의 선친을 따라 진주에서 살았는데, 진주권번에서 소리를 배워 오다가 한성준(韓成俊) · 박성준에게서 춤과 창을 사사받았다.

그 뒤 화성재인청 출신인 김인호(金仁鎬)에게서 춤을 배워 당시 춤의 명인으로 이름이 나있던 이동안의 영향을 받아 승무 · 살풀이춤 · 타령 · 굿거리 · 검무 · 농악 · 신칼대신무 등을 사사받았다.

승무는 승려무용, 살풀이춤 또는 궁중무와 탈춤의 영향을 받아 교방예술로 발전된 것으로 경기형 승무의 특징을 이루는 한성준 계통의 춤사위와 남도살풀이춤을 겸비하여 전수하여 나름대로 독특한 수법으로 다듬어져 내려 오고 있다. 1991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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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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