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가마는 길이 38.9m, 번조(소성)실 너비 2.2m이다. 가마터는 1997년∼1998년에 해강도자미술관에서 발굴·조사하였으며, 갑발과 청자, 백자의 퇴적이 거대한 구릉을 이루는 중간 부분에서 가마를 발굴했다. 가마 유구는 경사도가 약 10∼15도를 이루고, 가마의 좌우 측면에서 도자기를 넣거나 불을 때기 위한 7개의 출입구가 자리한다. 이 가마터에서는 청자와 소량의 백자가 함께 생산되었으며, 청자 가마가 설치되기 이전에는 도기(질그릇)가 제작되었다.
일반적인 생활용 그릇인 대접, 접시, 발, 완 등을 비롯하여 잔, 탁잔, 반구병, 유병, 주전자, 호(壺), 합, 벼루, 제기, 장고 등의 청자가 발굴되었다. 회백색 태토 위에 녹갈색 또는 황갈색 유약을 얇게 발랐으며, 그릇의 두께가 대체로 얇다. 가마터에는 완, 발, 접시 등의 그릇이 대량으로 발굴되었으며, 그릇의 측면은 직선에 가깝다. 발굴된 대부분의 청자는 중국 오대(五代)연간의 월주요산(越州窯産) 청자와 비슷하며, 손잡이 달린 주전자, 화판형 접시, 선햇무리굽완의 형태에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청자의 굽 안바닥에 음각으로 ‘十(십)’, ‘田(전)’, ‘三(삼)’, ‘村(촌)’, ‘孝[효 또는 노(老)]’, ‘京(경?)’, ‘至(지?)’, ‘甲戌(갑술)’ 명(銘)과 같은 기호나 문자, 간지(干支)가 새겨져 있는데, 특히 ‘甲戌(갑술)’명 청자의 경우 그 제작 연대는 974년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명문은 일부 갑발에서도 발견되는데, 그 중에서도 갑발과 받침의 윗면에 각각 새겨진 ‘吳越(오월), ’奉化(봉화)‘명은 월주요(越州窯)의 하나인 오월국의 봉화요(奉化窯)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되어 주목된다. 이밖에 요도구(窯道具)로서 갑발과 갑발받침, 뚜껑, 고리형그릇받침[執圈] 등이 발견되었다.
방산동 가마는 아궁이, 번조실, 측면 출입시설, 굴뚝부 등 각 부분별 상태가 비교적 잘 남아 있어 초기 벽돌가마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좋은 자료를 제공해 준다.